딸을 잃은 고통은 14년의 세월이 흘러도 옅어지지 않았다. 백화점 문화센터에 가서 스포츠댄스를 배우자고 엄마 손을 잡아끌던 딸. 이번 기회에 아빠도 춤 좀 배우라고 웃으며 아빠 목에 매달리던 대학생 딸. 판사나 검사가 아니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전 국무장관처럼 국제무대에서 큰 꿈을 펼쳐보고 싶다며 이화여대 법대에 입학했다던 스물두살의 앳된 여대생.
지난 2002년 영남제분 류원기(69) 회장의 아내 윤길자(71)씨가 자신의 사위와의 외도를 의심해 살인청부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지혜양은 부모에게 이 세상 단 하나밖에 없는 공주님이었다. 윤길자의 사위는 지혜양의 이종사촌 오빠였다.
19일 오전 경기도 하남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지혜양의 어머니 설모(64)씨에게 지난 14년의 기나긴 시간은 딸을 잊기는 커녕 그리움만 키워가는 고통스러운 세월이었다. 딸을 생각하며 술에 의지하게 됐고 밥도 2-3일씩 거른 설씨는 사망 당시 몸무게가 38kg에 불과했다. 165cm의 키에 비하면 턱없이 가벼운 체중이었다.
딸을 그리워하던 설씨가 한줌의 재가 돼 하남시 검단산 아래 마루공원 납골당에 봉안된 23일. 이날 오후 CBS노컷뉴스 취재진은 설씨의 남편이자 지혜양의 아버지인 하모(70)씨를 하남시 자택에서 단독으로 어렵게 만났다.
처음에는 기자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던 아버지 하씨는 CBS노컷뉴스 취재진과 2시간 넘게 인터뷰를 하며 때때로 북받치는 감정에 서럽게 울었다. 딸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아내까지 떠나보낸 죄책감이 서린 눈물이었다. 가해자 윤길자 내외에 대한 분통어린 호통도 이어졌다.
"오늘 마지막 유골 안치하면서 내가 아내에게 말을 건네기를 이제는 다 내려놓고 제발 짐을 벗으라고...하늘이 있다면 가서 지혜 만나서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 하고 이제부터는 좀 행복해지라고..."
하씨는 아내에게 한 마지막 작별 인사를 취재진에게 전하며 통곡했다.
"내가 인터뷰에 응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에요, 기가 막힌 일이지만 우리 개인사가 알려져서 대중들을 또한번 아프게 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언론과 만나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내가 생각해 봤을 때 집사람의 마지막 죽음의 몸짓이 결국 자기가 우리 딸을 위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무기력한 엄마로서의 심정을 표현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터뷰에 응하는 겁니다."
하씨는 흐느끼면서도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아내 설씨의 안타까운 죽음은 결국 애틋한 딸을 향한 마지막 몸부림이자 사명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렇게 죽은 건 결국 자기의 딸을 위한 마지막 사명의 몸짓이자 표현이 아닌가 생각해요, 비록 한 가정의 개인적인 비극이지만 이것이 계기가 돼 우리보다 더 아프고 더 힘들어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려고 저렇게 허망하게 간 것 같아요."
하씨의 분노의 칼끝은 억울하게 죽은 딸, 그리고 그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부조리로 향했다.
"피해자가 고통받는 잘못이 반복되는 사회 전체의 배금주의,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우리 사회 전반의 부조리를 마지막 가는 길에 고발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타락한 법조계, 부실한 행정권, 무기력한 검사와 판사, 돈에 휘둘리는 의사들을 생생히 되짚어 보라는 몸짓 같아요."
지혜양을 청부살해한 영남제분 회장 부인 윤길자는 지난 2004년 무기징역이 확정돼 교도소에 수감됐지만 유방암과 파킨슨병, 우울증, 당뇨 등 12개 병명이 적힌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고 대학병원 병실에서 호화생활을 했다. 돈을 받은 의사의 진단서와 형집행정지 처분을 남발한 무기력한 법조계의 합작품이었다.
윤길자가 형집행정지로 초호화 병원생활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난 2013년 초 아내 설씨의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고 했다.
"우리 집사람이 윤길자가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은 것을 보고 무너졌어요, 딸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무기력감이 결국 술에 의지하게 만들었고 자기학대로 이어진 거에요, 가슴에 비수를 꽂은 거지요."
지혜양 오빠 하모(39)씨는 평소에 "엄마! 우리가 윤길자보다 더 오래 살아야 복수하는 거에요, 건강 좀 챙겨요"라고 말했지만 가해자를 법의 심판대에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설씨를 서서히 무너뜨렸다고 했다.
아버지 하씨는 집 안에서도 회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14년 전 자신의 생일날 딸 지혜가 용돈을 모아 사준 비싼 점퍼라고 했다. 겨울이면 딸이 사준 점퍼만 입고 다닌다고 했다.
아내 설씨가 10년 넘게 살던 하남시 아파트 곳곳에는 딸에 대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현관 입구 신발장 옆 탁자 위에는 지혜양이 끔찍히 아끼던 요크셔테리어 '주리'를 꼭 껴안고 찍은 사진이 놓여있었다. 거실 탁자에는 지혜양이 여행가서 찍은 사진과 이화여대 교정에서 엄마 설씨와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 사진이 있었다.
학창시절 사용했다는 지혜양의 책상은 하남시로 이사온 뒤 작은방으로 옮겨졌지만 고등학교 졸업식 날 꽃다발을 들고 엄마와 찍은 사진이 책상 위 액자에 담겨 있었다. 액자 바로 앞에는 오래된 듯한 낡은 앨범 4권이 빼곡히 싸여 있었고 그 옆에는 지혜양이 초등학교 때부터 받은 상장과 성적표 등을 빼곡히 모은 파일이 놓여있었다.
어머니 설씨는 지혜양이 생각날 때마다 술을 마신 채 책상 앞에 앉아 앨범과 파일을 들춰보며 딸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계속 울었다. 앨범 안 사진 속에 지혜양은 엄마와 함께 한 일본 여행 중 배 위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초등학교 생일날에는 케익 앞에서 아빠 머리에 노란 리본을 달아놓고는 재미나다는 듯 손뼉치고 있었다.
아버지 하씨는 상처가 깊어 그동안 앨범을 들춰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내 설씨에게도 더이상 딸을 그리워하지 말라고 조언했지만 딸을 잃은 엄마의 유일한 피난처는 어린 시절 지혜양이 행복하게 웃고 있던 앨범뿐이었다고 했다.
지혜양이 키우던 애완견 '주리'는 2002년 끔찍한 사건 당시 새끼를 배고 있었다. 주리에게서 태어난 새끼 두마리의 이름은 '장군이'와 '멍군이'. 딸이 좋아하던 애완견에 딸의 체취가 남아있다고 엄마 설씨는 애완견 주리를 끔찍히 아꼈다. 새끼 장군이와 멍군이도 딸이 봤으면 좋아했을 거라고 살뜰히 챙겼다. 주리는 윤길자의 호화병원 생활이 알려진 지난 2013년에 죽었다. 새끼 장군이는 지난해 죽었다. 그리고 마지막 강아지 멍군이도 설씨가 하남시 아파트 안방에서 숨진 채 발견된 같은 날 거실에 쓸쓸히 죽어 있었다.
다음은 기사에 담지 못한 지혜양의 아버지 하씨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격한 표현 일부를 제외하고 전체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 인터뷰는 23일 오후 5시부터 2시간 넘게 어머니 설씨가 살던 경기도 하남시 자택에서 진행됐다.
기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씨> 내가 인터뷰에 응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에요. 기가 막힌 일이지만 이것이 우리 개인사로 알려져서 대중들을 또한번 아프게 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매체에 접근 안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주위에서도 말하고 또 내가 생각해 봤을 때도 집사람의 마지막 죽음의 몸짓이 결국 자기가 무력하게 우리 딸을 위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엄마로서의 심정이 아닌가. 이렇게 죽음의 몸짓으로라도 딸을 위한 사명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비록 한 개인적인 비극이지만 이것이 계기가 돼서 지금까지 우리보다 더 아프고 더 힘들어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위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일이 벌어지는 사회 전반의 배금주의와 부조리, 행정의 위협, 법조계의 타락, 무기력. 이런 것을 한번 생생히 되짚어 보자고 저렇게 허망하게 죽은 거 같아요.
사법부의 무기력한 의지, 그리고 우리 일반인들도 이를 쉽게 받아들이는데 익숙해져있어요. 사회의 잘못된 걸 가지고 엄정한 법집행이 돼야 하는데 이를 망각하고 돈으로 산 법무법인의 막강한 법조마피아. 이런 것들 앞에 법조계가 흔들리고 일관성을 잃고...불과 2~3년 전에 우리 아내가 아팠던 게 범인 윤길자가 감방에서 백주대낮에 형집행정지라는 짓을 저질러서 세브란스병원 호화병실에서 저녁 메뉴나 고민하고...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거잖아요.
기자> 가해자들이 한번이라도 진실되게 용서를 구했습니까?
하씨> 그 사건 이후 지금까지 만 13년이 지났지만 한번도 반성의 모습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양심이 마비된 의식을 갖고 있어서 응분의 반성을 할 자세가 안돼 있어요. 윤길자 남편 영남제약 회장이란 사람도 그렇고요. 이 사람들의 의식에는 잘못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당사자(윤길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남편(류원기)은 사돈 관계인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한번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집사람을 죽음으로 내몰린 건 한번도 진실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만약 용서를 바라는 반성의 모습이라도 보였다면 우리의 아픔이나 분노는 희석됐겠지요.
(허위 진단서를 발급한) 의사도 전혀 반성의 기색이 없어요.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거죠. 이번 사건으로 형집행정지에 대한 지침이 바뀌었다고 들었어요. 그건 좋은데 개선도 개선이지만 이게 제도가 나빠서가 아니라 이를 집행하는 사람의 문제잖아요. 의지나 자세가 안 돼 있는 한 언제라도 금력과 권력에 휘둘려 왜곡될 수 있습니다. 국민 모두가 감시자가 돼야 합니다.
기자> 가해자가 용서를 빌지도 않았고 돈으로 죄를 피해갔는데 가해자들 중 누가 제일 미운가요?
하씨> 물론 제일 미운 건 윤길자하고 남편 류원기고요. 오히려 (딸애를 살해한) 하수인들, 돈 때문에 도구화된 그놈들에 대해서는 어떤 면에서는 희생된 것 같아 연민이 느껴지기도 해요. 자기들 인생을 망친 불쌍한 사람들인 거지요. 그 다음에 분노를 느끼는 건 윤길자 사위인 김OO 판사지요. 저한테는 이종 조카인데 서울대 법대 나와서 자기 사촌동생이 죽기 전과 죽고 나서 아무런 역할을 못했잖아요. 지혜를 위해서 나서서 말리고 지 몸을 던져서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로봇 같았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운 건 윤길자의 형집행정지를 도운 의사와 법조인들입니다. 소위 배운 사람들이자 전문가들이 지적 능력을 악용한 거잖아요. 지성인이라면 오히려 잘못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해야하는 데요. 그런 실망과 분노는 저도 어쩔 수 없어요.
기자> 아내분이 평소 가해자에 대한 분노도 많이 표현했나요?
하씨> 가해자 윤길자에 대한 표현은 아예 안 했어요. 최고의 표현은 그냥 미친사람이다 정도에요. 구체적으로 하기에는 본인도 상처가 되고, 말로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거든요. 너의 미친 짓으로 우리 모두가 이 아픔에 빠졌다 정도. 아픔이 응축돼 있는 겁니다. 우리 집사람이 (형집행정지 받은) 윤길자를 봤을 때 집사람은 여자로서 무기력하잖아요, 집 안에서 억울한 분노를 술로 삭히고 무력함이 전부 자기학대로 이어진 겁니다. 내가 살아서 뭐하나 하면서 삶의 목표를 상실한 거에요. 딸에게 저런 짓을 벌이고도 반성은 없고 우리 가슴을 짓밟고 비수를 꽂는 거지요. 세월에 희석됐던 부분이 오히려 새삼스럽게 고통으로 온 겁니다. 결국 그것이 본인을 서서히 죽음으로 몰고 간 거 같아요.
기자> 아내분이 평소 딸을 많이 그리워했다는데 어떤 얘기를 하며 슬퍼했습니까?
하씨> 어릴 적 지혜가 학교 가서 반장되고 회장되고 주목받은 일들...그래서 부모로서 으스댈 수 있는 일들을 얘기했지요. 또 이화여대 법대라는 어려운 관문을 뚫고 힘든 길에 한걸음 다가가 합격한 즐거움, 대학 기숙사에서 고시 공부할 때 딸 친구들과 함께 만나서 자랑스러운 기분으로 얘기했던 거 떠올리고요. 이대 앞에 재밌는 데가 많잖아요. 맛집도 있고. 딸아이와 그런 데 다니면서 즐거웠던 추억들 얘기하며 많이 울었어요. 또 문화센터에서 스포츠댄스 함께 즐겼던 추억들도 얘기하고요. 나는 그런 거에 도저히 호응을 못하지만 딸애는 부모를 끔찍하게 생각했습니다. 잘난 척 안 하고 항상 약자 배려하고 의연했던 모습들. 그러니까 지혜 엄마는 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거에요. 그 기억들이 술 먹으면 더 진하게 다가오니까 술에 의존하고. 그게 유일한 자기 피난처였던 셈이지요. 남편인 나조차도 그렇게 절실하게 공유하지 못한 부분들인 거지요.
기자> 지혜양은 어떤 딸이었습니까?
하씨> 집사람이 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이유가 있어요. 애가 비범했거든요. 학업성적도 좋고 항상 약자 편에 서서 친구들을 배려하고요. 초등학교 때부터 반장이었지만 그렇다고 잘난 척하지도 않고 따돌림 당하는 아이들 편을 들었어요. 애 엄마의 유일한 친구들인 지혜 학창시절 학부형들도 지혜 같은 애를 본 적이 없다고 칭찬했고요. 법대를 간 이유도 출세하려고 그런게 아니라 미국 국무장관을 롤모델로 했어요. 국제적으로 한국 위상을 높이겠다고요. 판사, 검사, 변호사 말고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목표가 분명했어요. 동량지재로서의 자질이 있었지요. 그래서 더 큰 아픔인거에요.
문화센터 가서 스포츠댄스 배우자고 지 엄마를 항상 챙겼고요. 쇼핑도 함께 다니고요.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지혜가 백화점에서 사준 옷이에요. 자기는 엄청 절약을 해도 친구나 부모한테는 과감하게 베푸는 아이였어요. 아빠 생일 때는 고급 넥타이를 과감하게 사주기도 하고요.
지금도 가슴이 아픈 게 이대생들이 사치풍조가 있을까봐 제가 용돈을 많이 안줬어요. 내가 당시에는 아이 용돈 줄 능력이 있는데도 아이 위한다고 통크게 용돈 못 준게 너무 후회됩니다. 물질이든 정신이든 아끼면 X되는 거에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에요. 사랑하면 미루지말고 말만이라도 표현을 해야했는데...
겨울만 되면 이 점퍼를 입습니다. 다른 건 안입어요. 값이 비싸서 딸애가 사준지 14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 새거 같아요.
기자> 지혜양 책상에 앨범이 수북히 쌓여 있던데요.
하씨> 우리 가정의 행복한 순간들이 작은 방 사진 속에 있는 거지요. 내가 가끔 보면 아내가 술만 마시면 저 방에서 울고 있었어요. 앨범이 이만큼 쌓여 있어요. 그 앨범 전부는 딸하고의 행복했던 순간들이니까요. 정면에 보이는 사진은 고등학교 졸업사진이고요. 이대 교정 사진도 있고요. 슬픔을 극복하지 못한 거에요.
기자> 어머니는 지혜씨가 잠들어 있는 남양주 납골당에 자주 갔습니까?
하씨> 처음에는 자주 갔는데 가면 더 슬프니까 차차 안가더라고요. 나도 적극적으로 가지 않고요. 상처가 되니까요. 오히려 극복됐으면 자주 갔을 텐데 상처가 남아 있어서요. 집사람은 하남 마루공원에 오늘 봉안했어요. 시골이지만 굉장히 전원적인 곳이에요. 조만간 지혜도 엄마 있는데로 함께 나란히 있도록 옮길 겁니다.
내가 아내 유골 마지막으로 안치하고 말을 건넸어요. 이제는 다 내려놓고 제발 짐을 벗으라고요. 하늘나라가 있다면 가서 지혜 만나서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 하라고요. (아버지 하씨는 아내 얘기를 하며 크게 울었다) 이제부터는 좀 행복해져라. 제가 더 지켜주지 못해서 가슴 아프고 미안하고요. 집사람이 지혜 만나면 현실에서 힘들고 고통스러워하는 것 차라리 벗어날 기회가 된다면 내가 오히려 (아내) 죽음을 수용할 수도 있겠다는 심정입니다.
기자> 어머니는 어떻게 발견된 거지요?
하씨> 집사람이 숨져 있는 걸 19일 오전에 아들이 발견했습니다. 우리 아들이 주말마다 오니까요. 근데 전날 전화를 안 받은 거에요. 강아지 데리고 나갔거나 장에 갔다고 예사로 생각한 거지요. 그런데 이런 엄청난 비극이 일어날지는 몰랐던 겁니다. 병은 없었어요. 하지만 오랫동안 식사를 제대로 못하고 술도 마시니까 체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그렇게 허망하게 간 것 같아요. 그날따라 평소 안 마시던 소주병하고 맥주 캔이 있더라고요.
저도 아내와 이곳에서 2006년까지는 함께 살았는데 딸애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자꾸 서로 멀어지더라고요. 아픔이 상대에게 잠재적인 원망으로 투사가 되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좀 떨어져 있자 생각해서 강원도로 나 혼자 나가 살고 대신 집에 자주 들렀습니다.
집사람과 전화통화도 자주했고요. 올해 설에도 아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와 단란하게 차례도 지내고 차례상 술로 음복도 하고요. 집 뒤에 약수터 가서 산책도 하고요. 그리고 14일에 통화했는데 새로 데려온 푸들 강아지가 천방지축이니까 데려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17일쯤 전화했는데 안받더라고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 때 사단이 난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어요.
기자> 지혜양이 생전에 강아지를 엄청 아꼈다고 하던데요.
하씨> 요크셔테리어인 엄마 강아지 '주리'는 지혜가 살아있을 때 엄청 귀여워해 집사람이 끔찍하게 사랑했어요. 딸아이 체취가 남아있다고... 그런데 재작년 추석 때 죽었어요. 주리가 낳은 새끼들도 지혜가 좋아할 거라도 많이 아꼈어요. 장군이와 멍군인데 장군이는 지난해 죽고요. 마지막 새끼인 멍군이는 집사람이 안방에서 숨져 있던 날 거실에서 같이 죽어있더라고요. 상징적인 거지요. 지 아끼던 엄마를 잃고 그런 거 같아요. 저기 뛰어다니는 푸들은 새로 데려온 강아지고요.
기자> 영안실에서 지혜양을 마지막 볼 때 눈을 떴다고 하셨는데요?
하씨> 집사람은 딸아이 주검을 못 보게 했어요. 그 고통을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영안실에 가서 지혜야 아빠가 왔다 너 여기서 왜 이러고 있니? 눈 좀 떠보라고 울면서 말하니까 딸애가 한쪽 눈을 뜨는 거에요. 그때 진짜 놀랐습니다. 그게 무슨 물리적인 현상인가 싶기도 하고...냉동고에 있다가 따뜻한데 나오니까 그런 걸 수도 있는데 너무 슬펐지요. 사람이 죽어도 청각이 오래 존재한다는 얘기도 들어봤는데 그래서 그런건가 싶기도 하고. 아빠의 정성이 혼에 닿기라도 했는가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나도 지금 마냥 무너지기 시작하고 감정에 몰입하면 못견딥니다. 순간적으로 절망 상태가 되면 다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