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앵무새 죽이기'와 '냉혈한'의 차이

20일 토요일 아침 <앵무새 죽이기>의 작가 ‘하퍼 리’(Harper Lee)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책장에서 <앵무새 죽이기>를 찾아 펼쳐보았다. 1930년대 앨라배마 주 ‘메이컴’이라는 도시를 무대로 백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무고하게 체포된 흑인을 변호하는 인권변호사의 이야기를 그의 어린 딸 스카웃의 시선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파도처럼 밀려들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하퍼 리’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나서 이내 떠오른 사람은 ‘트루먼 카포티’(Truman Capote)였다. 그의 대표작 <냉혈한>(In Cold Blood)은 미국 현대문학사에서 ‘논픽션 소설’의 경전으로 불릴 만큼 유명하다. ‘일가족 살인 사건과 수사 과정을 다룬 진실한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미국 대학 내 저널리즘 강좌의 대표적인 교재로 ‘신 저널리즘’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다.

‘하퍼 리’와 ‘트루먼 카포티’는 어린 시절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 주 ‘몬로빌’에서 이웃의 친구로 자랐다. 소꿉동무였던 두 아이가 훗날 나란히 소설가가 되고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칠 줄 누가 알았을까. 또한 두 사람의 인생행로가 극명하게 갈릴 줄도.

작가의 길에 먼저 들어선 것은 ‘카포티’였다. 그는 22살 되던 1946년 ‘오 헨리 상’을 받으며 유망한 젊은 작가로 두각을 드러낸다. 그리고 34살 되던 1958년 <티파니에서 아침>을 발표한다. 이 소설은 ‘오드리 헵번’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로 제작되면서 유명해진다.


그때까지도 무명이었던 ‘하퍼 리’는 몇 차례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다가 34살 되던 1960년 첫 소설 <앵무새 죽이기>를 출간한다. 그 소설은 서점에 깔리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며 독자들은 물론 평단의 찬사를 받는다. ‘하퍼 리’는 이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받고, 그 후 이 작품이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과 남미, 아시아 등 전 세계에 번역 출간 되면서 당대 최고의 작가로 올라선다.

‘카포티’는 41살 되던 1965년 <냉혈한>를 발표한다. 이 작품은 무려 500만부가 판매되는 대기록을 세우며 전 미국과 문학계를 깜짝 놀라게 한다. 이후 ‘카포티’는 ‘헤밍웨이’의 뒤를 이어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세계적인 명성과 부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인생은 성공과 함께 정 반대의 길로 들어선다. ‘하퍼 리’는 <앵무새 죽이기>로 일약 스타의 자리에 오르자 정작 자신을 우상화하고 상품화하려는 사회를 멀리하기 시작한다. 대중의 눈을 피해 평생을 독신으로 은둔자의 삶을 살아간다.

‘카포티’는 <냉혈한>으로 일약 유명인사가 되면서부터 상류사회 명사들과 교제를 하고,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으며 아름다운 여인들에 둘러싸여 화려한 삶 속으로 들어간다. TV 토크쇼의 단골 출연자로 대중의 인기를 얻었지만 알코올 중독과 신경쇠약으로 약물에 의존한다. 1984년 아직 한창 창작열을 불태울 수 있는 60세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약물중독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명성을 뒤로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은둔자처럼 살던 ‘하퍼 리’는 81세 되던 해 이런 글을 썼다. “사람들은 풍요한 사회에서 노트북, 휴대전화, 아이팟, 그리고 빈방 같은 공허한 마음을 갖고 산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책과 함께 느리게 살고 있다”

자신의 내면을 망가뜨리고 파멸의 길을 걸었던 ‘카포티’는 죽기 얼마 전 이렇게 고백했다. “…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슬픈 것은, 그럼에도 삶은 지속된다는 거야. …만일 한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세상도 그를 따라 멈춰야만 해. 하지만 결코 그런 일은 없지”

<앵무새 죽이기>를 책장에 꽂으며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떠올린다. 빠르게 살고자 했던 ‘카포티’는 지금으로부터 32년 전, 60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느리게 살고자 했던 ‘하퍼 리’는 지난 18일, 89세의 나이로 소꿉친구 ‘카포티’가 있는 세상을 향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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