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굳어진 차급의 틀에서 벗어난 현대차 ‘마르샤’가 과거에 단종됐고, 현대차 ‘아슬란’ 역시 최근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지만, 다음 달 출시되는 르노삼성의 ‘SM6’ 등은 좋은 출발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SM6는 크기로 볼 때 중형차라고도 준대형차라고도 말하기 어렵다. 일단 차의 길이는 4천 849mm로, 중형차인 SM5(4천885㎜)와 현대차 쏘나타(4천 855mm)와 비슷하다. 그러나 SM6의 앞 뒤 차축간 거리, 즉 휠베이스는 SM7과 같은 2천 810㎜여서 차량 내부가 넓은 편이다.
겉은 중형이지만 속은 준대형에 해당되는 셈이다. SM6는 기존 차급 기준으로 볼 때 중형도 준대형도 아닌, 정체성이 애매한 차라는 일각의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다.
과거에는 차급 정체성이 애매한 차의 경우 당초 기대와 달리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흔히 ‘비운의 세단’으로 불리는 현대차 ‘마르샤’가 대표적이다.
95년에 출시된 마르샤는 ‘쏘나타’보다는 크고 ‘뉴그랜저’보다는 작은 차로, 중형과 준대형의 틈새를 메우기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 기획됐다고 한다. 그러나 차급에서 강력한 정체성을 지난 쏘나타와 그랜저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결국 98년 시장에서 사라졌다.
지난 2014년 준대형차와 대형차의 중간 차급으로 나온 현대차의 ‘아슬란’도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에 낀 차라는 시장 반응 속에 지난달 판매량이 266대로 전달에 비해 50%이상 감소하는 등 실적이 좋지 못하다.
그러나 르노삼성의 SM6는 애매한 차급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좋은 출발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사전 계약을 받은 결과, 휴일을 뺀 영업일 기준으로 10일 만에 6천대를 돌파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600여대의 계약이 이뤄진 셈으로, 이런 추세라면 다음 달 출시 전에 만대 계약도 가능한 것 아니냐가 기대도 일고 있다. 르노삼성은 연간 5만대 이상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마르샤와 아슬란이 각각 쏘나타와 그랜저, 그랜저와 제네시스와 같은 막강한 형제차 사이에 끼어 존재감을 살리지 못하고 흡수됐지만, SM6는 SM5와 SM7 사이에서 오히려 더 강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형국이다.
중형차에서는 보기 어려운 고급 사양을 대폭 채택해 고급스러움을 확보하면서도 중형차 수준(2천325만∼3천250만원)의 합리적인 가격을 설정한 것이 SM5와 SM7에 흡수되지 않는 SM6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르노삼성은 손가락 터치만으로도 스포트, 컴포트, 에코, 뉴트럴, 퍼스널 등 5개 주행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터치스크린, 운전 중에 등을 주물러주는 시트 마사지 기능, 지그재그 언덕길에서도 쏠림 없이 안정적 운행을 가능하게 하는 '랙 구동형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R-EPS)', 문자 메시지가 도착하면 이를 화면이나 음성을 통해 알려주는 시스템 등을 SM6만의 고급 사양으로 내세우고 있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가격 대비 고급 사양을 갖춘 것이 수도권 중산층 주부 등을 중심으로 효과적으로 어필하고 있다”며 “SM6를 통해 중형, 준대형 등으로 굳어진 시장의 틀을 바꿔나갈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SM6의 이른바 ‘중간지대 포지셔닝’에 대해서는 우려도 있다. SM5와 SM7사이에서 흡수되지 않는 SM6의 존재감이 오히려 SM5와 SM7의 판매 감소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이다.
지난 1월 SM5는 529대, SM7는 361대 판매로 전달에 비해 모두 80% 정도 감소했는데, 이런 판매 감소에는 신차인 SM6의 출시 기대감도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SM6가 독특한 위상의 확보로 오히려 자기 시장을 깎아 먹을 수 있다는 우려, 신차 출시라는 단기적인 효과를 넘어 앞으로도 지속적인 선전을 이어나갈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인다. 타사의 신차 출시 동향과 수입차 동향, 르노삼성의 마케팅 능력 등 변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림대 김필수 교수는 “수입차 대중화로 소비자의 선택폭이 다양해진 현 시점에서 정해진 차급의 영역 파괴는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며 “SM6 출시만이 아니라 오히려 SM4, SM8 등과 같은 추가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국 자동차 업계의 역량이 제고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