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직접 6·25 전쟁을 겪은 세대다.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가난까지 몸소 겪었다. 분단 현실과 이념 대립이 그의 중기 영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다. 소위 '반공 영화'로 분류됨에도 이들 영화는 모두 '북한에 대한 혐오'보다는 '분단과 이념 대립이 빚어낸 아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금 남북 관계는 '신냉전시대'가 연상될 정도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남과 북을 연결하는 통로였던 개성공단은 폐쇄됐고, 정부·여당은 연일 대북 강공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세계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미국과 중국의 역학관계 안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는 고조되고 있다.
"앞으로 미국과 한국에서 대북강공 얘기가 많이 나올 거야…."
한국 영화의 거장이자 영화적으로 북한을 다뤄 온 임권택 감독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무엇보다 개성공단 폐쇄를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고 봤다.
"이미 정부의 결정이 내려진 상태인데 뭘 더 어쩔 수가 있겠어요. 관계가 좋게 회복되면 좋은 것이지만 현재 그런 상태가 아니잖아요."
상황은 임 감독이 바라는 쪽과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머지않아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그가 불안을 숨기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남북 관계를 편안한 쪽으로 가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북한은 계속 우리를 조여 왔죠. 전쟁이 나면 안 되는데 전쟁이 나게끔 판세가 돌아가고 있어요. 북한의 무기는 결국 미국이 아닌 우리를 조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임 감독은 스스로를 "전쟁을 겪고 그것을 영화로 만든 세대"라고 칭했다. 이념 대립에서 불거진 잔혹한 전쟁은 평생 그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발자국을 남긴 셈이다.
해방 이후 한반도를 휩쓴 이념 대립을 그린 조정래 작가의 소설 '태백산맥'을 영화로 만들 당시에도 그는 정부 권력의 압력을 받아가면서도 끝내 영화를 완성했다.
"전쟁을 겪고, 그 전말을 알고 있는 세대에게는 현 상황이 겁이 납니다. 전쟁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는지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그런 작품들을 했어요. 세월이 간다고 해서 그런 악몽이 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