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비핵화-평화협정 병행' 카드 왜 나왔나

한미양국의 예봉 피하면서 수정 제안…안보리협상 '물꼬' 기대

왕이 중국 외교부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한미 양국이 개성공단 가동 중단 등 대북 압박 강도를 높여가는 와중에 중국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동시 병행 추진 카드를 들고 나옴으로써 배경과 의도가 주목된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17일 줄리 비숍 호주 외무장관과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관영 신화통신 기자의 질문에 “중국은 반도 비핵화 실현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을 병행 추진하는 협상 방식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북핵 문제에 대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소극적인 한국과 미국의 책임도 있다는 양비론적 입장이었기에 이번 제안이 별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대북 제재를 놓고 한미 양국과 중국 간 갈등이 확대되는 시점에 나왔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를 둘 수 있다.

중국은 최근 기존의 완강한 태도에서 벗어나 유엔 안보리의 고강도 대북 제재를 어느 정도 용인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왕이 부장도 이날 “조선(북한)은 필요한 대가를 치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이 4차례나 핵실험을 감행한 것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적 분위기에 중국도 책임있는 대국을 지향하는 입장에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25년만에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경제 경착륙과 이에 따른 글로벌 투기자본의 공격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중국으로선 외치에만 매달릴 여력이 많지 않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사드 배치 논의 등 예상외의 강수를 두면서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인 것도 중국을 고민스럽게 했다는 분석이다.


중국으로선 일단 예봉은 피하면서도, 그렇다고 한미 양국의 압력에 밀렸다는 인상은 피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은 기존 입장은 유지하면서도 한미의 주장을 받아들일 공간을 넓힌다는 명분과 전략적 조율의 2개의 목적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점을 종합할 때 중국은 다소 수세적인 상황에서 나름의 타협점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국이 그냥 물러나진 않았다. 평화협정이란 단서조항을 첨부함으로써 공을 한미 측 테이블로 넘긴 것이다.

왕이 부장은 비핵화·평화협정 병행 추진에 대해 “이 사고방식은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반도 핵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도움이 된다”며 “시의적절한 때에 구체적인 논의를 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미 양국이 이를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에 대한 압박이 어느 정도 먹혀들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현 상황을 보다 더 즐기려 할 것이 때문이다.

이미 한미 양국은 북한 체제붕괴까지 감안한 ‘끝장 제재’ 결의(terminating resolution)로 가닥을 잡은 상태다.

무엇보다 평화협정은 북한의 단골 레퍼토리이고 한미 양측은 이를 항상 일축해왔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극도의 불신에서 ‘비핵화를 위한 진지한 태도’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기류는 4차 핵실험 이후 더욱 강화됐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이번 제안은 대북 제재 수위를 둘러싼 팽팽한 교착상태를 허무는 물꼬 역할이 기대된다.

김 교수는 “중요한 것은 중국이 (조율을 위해) 한 발 다가섰다는 것”이라며 “한미 양국도 제재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중국이 우려하는 부분들을 풀어주는 보다 융통성 있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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