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연출가 이윤택의 '울분'과 일그러진 '문화융성'

이윤택 연출가 (사진=자료사진)
한국의 대표 연출가 이윤택이 경북 A시 소속 시립극단에서 객원연출가로 있을 때의 일이다. 시립극단의 상임연출가가 공석이었던 A시는 이윤택을 객원으로 초빙해 지역 연극 발전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A시를 소재로 한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무대에 올리는 등 단원들과 함께 열정적인 활동을 펼쳤다.

어느 가을날, 이윤택이 A시 시립연극단 객원연출을 그만 뒀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본 결과 사실이었다. 한 두 사람 건너 해임 이유를 들어봤다. 이윤택이 '노무현 사람'이라는 소리가 시장 귀에 들어갔고, '그런 사람에게 시립극단을 맡길 이유가 없다'는 주변의 고언을 듣고 해촉을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2013년 일이다.

이윤택에게 그런 일이 지난해 또 일어났다. 부산광역시 B군으로부터 지원 약속을 받고 추진했던 '안데르센 어린이극장'이 개장 한 달 만에 문을 닫았다. 당초 예산을 지원하기로 한 B군 의회가 운영예산을 전액 삭감해버렸다. 극장을 운영하는 주체가 '이윤택'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이윤택은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창작기금 희곡 심사에서 100점을 받고도 탈락했다. 특정 예술가에게 문예기금이 집중 되서는 안 된다는 것이 문체부 해명이었지만 예술계에서는 정치검열로 보고 있다.

이윤택은 '연희단거리패'를 30년 끌어온 한국의 대표적인 연출가다. '시민K' '오구' '바보각시' 등 한국적 원형을 통해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렇게 외길 연극인생을 통해 대한민국 연극계를 살찌우면서 예술혼을 불태운 연극인이 존경받기는커녕 푸대접을 넘어 수모를 당하고 있다.


다른 이야기지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올해부터는 '우수문예지 발간지원사업'을 폐지했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사업'은 대폭 축소했다. 우수문예지와 문학 분야 주요 기관지의 작품 원고료를 지원했던 '발간지원사업'은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문예지 시장을 살리고 작가들의 생계유지를 돕는 역할을 해왔다. '현대문학' '문학사상' 등 모든 월간 문학지와 계간지가 지원을 받았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은 3년 새 소설가와 시인 등 지원 대상이 100명에서 88명, 20명으로 급감했다.

문화예술위원회는 ‘문예진흥기금’이 계속 줄어들어 오는 2017년 고갈을 맞을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해명이다. 예술계의 반발은 거세다. 정부예산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데도 이를 끊어버리겠다는 것은 사실상 정부가 예술인들의 창작지원에서 손을 떼겠다는 의도로 본다.

이런 와중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에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이문열이 16일 선임됐다. ‘예술인복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예술인복지재단은 올해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예술인들의 보험료 지원과 공연예술인 자녀의 보육지원, 창작역량 지원, 직업역량 강화 등을 경제적으로 지원한다. 이 재단은 한해 사용하는 예산만 240억 원이다.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문화예술위원회’ 사업을 폐지하거나 축소시키면서 새로 출범한 ‘예술인복지재단’에 대해서는 과감한 지원으로 희비가 엇갈리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다. 예술인들에게는 ‘문화융성’을 내세운 정부의 국정지표가 편향성에 함몰돼 무색해진 상황이다. 이런 흐름이 예술인들의 성향을 고려한 정책적 판단 때문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예술인은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일반인들에 비해 매우 예민하고 직선적인 이념적 렌즈를 지니고 산다. 이렇게 까다로운 예술인들이 창작을 통해 무한한 상상과 위로와 평화의 미래를 그려낸다. 그들 모두가 좌우 이념에 구애되지 않고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품격 있는 정부를 꿈꾼다.

현실은 그로부터 거리가 멀다. 연출가 이윤택은 연희단패거리 3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이게 제대로 된 사회인가. 이렇게 야만적일 수가 있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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