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올모스트 메인'이 겨울 연극이라고요?"

[노컷 인터뷰] 연극 '올모스트 메인' 배우 주민진, 홍지희

같은 캐릭터라도 어떤 배우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생명을 가진 캐릭터가 태어난다. 때문에 배우별로 숨결이 깃든 동명의 다른 캐릭터를 바로 비교해 볼 수 있는 것은 연극만이 주는 특별한 재미이다.

사랑과 관련한 아홉 가지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형태로 보여주는 연극 '올모스트 메인'(Almost MAINE)에서 배우 주민진(33)과 홍지희(29)는 여타 배우와는 또 다른 결의 연기로 연극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연극 '올모스트 메인'에 출연 중인 배우 주민진과 홍지희 (사진=Story P제공)
두 배우는 연극 '올모스트 메인' 에피소드 중 'Prologue', 'Interlogue', 'Epilogue', Sad and Glad'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지난 12일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난 두 배우는 서로를 향해 '진지하다'는 공통된 평가를 내렸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제가 보고 느낀 민진 오빠는 모범생 같아요. 아무에게도 안 보여주는 자신만의 연기 노트가 있는데, 연출님이 해주시는 얘기를 항상 적고 있어요. 자기 씬도 아닌데 항상 필기를 하더라고요. 꼭 자신에게 하는 얘기가 아니어도 모든 사람의 이야기에 항상 관심을 갖고 귀 기울이고 있달까요." (홍지희)

"지희는 '올모스트 메인' 출연 배우 중 제일 막내인데, 막내 같지 않아요. 연습할 때 각자 대본 분석을 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지희가 분석해 온 내용을 들을 때면 ‘즉흥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어젯밤에 정말 고민을 많이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연습할 때 지희는 힘들거나 고민이 많거나 그런 티를 안 내거든요. 제가 오히려 배우는 게 많아요." (주민진)

연극 '올모스트 메인' 에피소드 'Where is Went'에서 'PHIL' 역을 연기하는 배우 주민진(우). (사진=Story P제공)
주민진은 실제로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은 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 독서광에, 대학로의 젊은 인기 배우 박해수 ,임철수, 이준혁, 신성민, 최성원과 배우집단 '하고 싶다'를 통해 스스로를 단련 중이다.

"배우집단 '하고 싶다'의 첫 취지는 놀려고 모인 건데, 모여서 수다를 떨다 보니 연기에 대한 고민도 나누게 되고, 그런 대화가 서로에게 '힐링'이 됐어요. 그래서 책도 보며 공부도 하고, 배우 선생님도 초빙해 가르침도 받는 모임이 됐죠."(주민진)

배우들끼리 어찌 보면 서로 경쟁자이지만, 주민진에게 그런 경쟁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남보다 자기와의 싸움이 우선인 탓이다.

"저는 경쟁 자체보다 배우로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봐요. 누군가는 방송에 데뷔하고 싶고, 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작품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이 일(직업)을 통해 얻고 싶은 게 무엇인가 고민하고, 그 과정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하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다같이 꿈꿔요. 각자 그런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의 경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주민진)

연극 '올모스트 메인' 에피소드 'Sad and Glad'에서 'SANDRINE' 역을 연기하는 배우 홍지희(우). (사진=Story P제공)
막내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들은 홍지희의 고민 역시 '연기'에 방점이 찍혀 있다. 홍지희는 뮤지컬로 데뷔했다. '김종욱 찾기', '빨래', '커피프린스 1호점' 등에서 활약했다. 노래를 잘 하기로 평가받는 홍지희가 '올모스트 메인'에 도전한 것은 '연기'로만 승부해고 싶어서이다.

"제가 어리다는 핑계로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요. 나이가 어리다고 대우받고 싶지도 않고요. 체구가 작아 어린애 같다고 저를 여리게 보는 분들이 많아요. 실제 성격은 여린 면이 있지만, 일부터 더 털털하게 강하게 보여지려고 해요."(홍지희)

"뮤지컬로 데뷔했고, 계속 뮤지컬을 해서 연극에 도전해 보고 싶었어요. 노래 없이 오직 연기만 하는 그런 역할. '뜨거운 여름'도 연극이긴 했지만 노래를 하는 캐릭터였거든요. 그러니 '올모스트 메인'에서 오로지 연기만 하는데 '잘 할 수 있을까, 비어 보이지는 않을까' 많이 걱정했죠."(홍지희)


'올모스트 메인'이 옴니버스 연극이라 연기가 쉽지는 않았다. 짧은 시간 다른 역할을 선보여야 하니, 보통의 연기력으로는 소화하기 어렵다.

"10분 안에 모든 걸 보여줘야 할 정도 씬들이 짧잖아요. 보통 공연을 하면 배우가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힘을 받는데, '올모스트 메인'은 배우가 혼자 그 감정을 갖고와 짧은 시간에 관객을 설득해내야 하니까, 그런 게 부담되고, 어려웠어요. 그래도 이번 작품을 통해 개인적으로 더 깊어졌다는 기분이 들어요." (홍지희)

연극 '올모스트 메인'에 출연 중인 배우 주민진(우)과 홍지희 (사진=Story P제공)
'연기'에 대한 두 배우의 고민은 찰떡 호흡을 통해 극대화된다. 그 기저에는 서로를 향한 '배려'가 있다.

"'Sad and Glad'의 경우 제가 주로 끌고가는데 큰 틀 바꾸지 않는 선에서 지희가 잘 받아줘요. 제가 하는 고민들도 인정해주고, 서로 같이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서, 의지도 많이 되고요."(주민진)

"민진 오빠는 예민한 편인데, 남을 불편하게 하는 예민함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연기하면 상대방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저렇게 연기하면 편할까' 하는 예민함이에요. 항상 상대를 배려하려 해요."(홍지희)

캐릭터에 자기 본연의 성격을 반영할 수 있었던 것은 민준호 연출의 도움이 크다. 민 연출은 배우들에게 캐릭터를 잡지 말 것을 요구했다.

"보통 이 캐릭터는 목소리가 어떻고 생김새가 어떻다 하며 디자인을 하고 그에 맞춰서 연기를 하는데, 민준호 연출님은 '올모스트 메인'에서 캐릭터를 정의내리지 말라고 하셨어요. 캐릭터를 잡고 연기하면, 실제로 표현하고자 하는 게 뒷전이 될 수 있다고. 그래서 홍지희스러운 캐릭터가 더 나오는 것 같아요. 연극의 상황이 실제 상황 같기도 하고요." (홍지희)

"실제 성격이 상대를 민망하지 않게 하려는 게 있어요. 예전에 헤어진 여자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축가해달라고 연락이 왔는데, 그 친구가 민망하지 않게 쿨한척 승낙했어요. 제가 연기하는 'Sad and Glad'에서 'Jimmy'도 그런 모습이 나타나요. 오랫만에 만난 옛 여자친구를 붙잡고 싶어하지만,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자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게 쿨한척 축하해주는 그런 모습이. 제가 겪은 경험과 감정을 투영한 연기이죠.(민망한 웃음)"(주민진)

연극 '올모스트 메인' 에피소드 'Sad and Glad'에서 'JIMMY' 역을 연기하는 배우 주민진(좌). (사진=Story P제공)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올모스트 메인'인 만큼,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도 많다. 특히 주민진은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배역을 다 하고 싶다.

"도전해보고 싶은 배역이요? 하나만 정해야 하나요? 보통 그런 질문 나오면 하나의 배역을 말하는데 전 정말 다 해보고 싶어요. 다음에 또 '올모스트 메인'에 도전해서 다른 배역을 할 거예요."(주민진)

연극 '올모스트 메인' 에피소드 'Story of HOPE’ 중 'HOPE' 역의 배우 홍지희. (사진=Story P제공)
홍지희는 대사 위주의 배역이 아닌 몸을 많이 쓰고 감정을 변화하는 씬에 도전하고 싶다. 에피소드 'Story of HOPE'에서 홍지희가 연기하는 'HOPE' 역은 오로지 대사만으로 갑자기 남자로부터 떠나고 돌아온 이유를 첫 장면부터 터트린다. 장면은 시작이지만 내용만 보면 여느 영화의 끝장면 같다.

"공연 때마다 달라지긴 하는데 다음에 하게 된다면 '다리미판'을 휘두르는 'This Hurts'의 'Marvalyn' 역을 하고 싶어요. 지금은 대사 위로 하니까, 몸을 많이 쓰고 상황에 맞춰 감정 변화를 겪는 씬을 해고보 싶어요. 배우로서 재미 있을 것 같아요." (홍지희)

연극 '올모스트 메인'에 출연 중인 배우 주민진. (사진=Story P제공)
연극 ‘올모스트 메인’은 캐나다 메인(MAINE) 주 북쪽 오지에 있는 오로라가 보이는 가상의 마을 ‘Almost(올모스트)’를 배경으로 한다. 때문에 겨울 연극의 대명사로도 꼽힌다. 하지만 주민진은 겨울에만 어울리는 작품은 아니라고 한다.

"겨울 하면 가장 먼저 꼽는 연극으로 '올모스트 메인'을 말하시는데, 배경이 되는 지역이 겨울일뿐이지,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작품이 주고자 하는 이야기는 우리 삶에 언제나 녹아 있는 '사랑'에 대한 것이잖아요. 관객이 조금만 상상력을 펼치시면, 오히려 새롭게 다가올 거예요.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무엇을 해주는 게 잘해주는 것인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죠." (주민진)

연극 '올모스트 메인'에 출연 중인 배우 홍지희. (사진=Story P제공)
홍지희는 '머리 아픈 분들에게 편안히 관람할 수 있는 연극'이라고 추천했다.

"편안한 상태로 볼 수 있으니까, 머리 아픈 게 싫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보고 나면 각자 사랑에 대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게 있을 거예요. 사랑이란 게 우연을 운명으로 바꾸잖아요. 연극에서 오로라가 등장하는데, 이게 자연현상이긴 하지만 늘 일어나는 게 아니라 운이 좋아야 볼 수 있어요. 흔히들 만날 때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고 헤어지고 나면 운명이 아니었어라고 하는데, 연극을 보고나면 각자 드는 사랑 이야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될 거예요." (홍지희)

마지막으로 두 배우에게 올해 바람이 있다면 무엇인지 물었다. 두 배우 모두 건강과 함께 연기적으로 한층 성숙해지기를 원했다.

"연습하면서 제 뜻대로 잘 안 풀릴 때가 있었어요. 그때 민준호 연출님이 저에게 '너의 경력을 연기력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하셨는데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크게 깨달았어요. 언제부턴가 이 인물은 이런 역할이니 이렇게 하자는 방정식처럼 연기에 결론을 내리고 있었거든요. 갇히지 않고, 언제나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매작품에 도전하고 싶어요. 그 변화의 과정을 받아들이면서, 힘들다 하더라도 이겨내고 싶어요. 그리고 또 하나 바람이 있다면 아프지 말고 건강했으면 해요."(주민진)

"개인적으로 목표를 멀리두지 않아요. 우선 목표가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공연을 잘 마무리하는 것. 그리고 다음 달부터 '빨래'에 출연하는데 이것 역시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공연했으면 해요. 지금처럼 꾸준히 한 계단, 한 계단 밟으면서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아, 여행도 가고 싶고요."(홍지희)

두 배우의 만남은 유쾌하면서도 진지해서 말 한마디도 빼고 들을 게 없었다. 인터뷰 시간이 짧아 아쉬웠을 정도. 진지한 모습으로 연기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는 배우 주민진과 홍지희가 출연하는 연극 '올모스트 메인'은 4월 10일까지 대학로 상명아트홀 1관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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