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또 골목상권 진출…이번엔 '쌀'

도정공장 만들어 쌀 포장판매. 미곡종합처리장 반발

롯데그룹이 계열사인 롯데상사를 통해 쌀 포장판매 사업까지 진출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롯데마트가 포장쌀을 납품받아 단순 판매만했지만 앞으로는 직접 쌀을 도정해 포장한 뒤 롯데상표로 비싼 가격에 판매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중소 RPC(미곡종합처리장)들은 '골목상권 죽이기'라며 벌써부터 반발하는 등 찬반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 쌀 유통시장의 비밀…저품질의 혼합미

현재, 국내 쌀 유통시장은 농민들이 쌀을 생산하면 농협RPC(149개)와 민간RPC(75개)가 수매해서 도정한 뒤 자체 상표를 붙여 대형 할인매장 등에 납품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지역별로 통합 상표를 사용해 '임금님표 이천쌀', '청원 생명쌀' 등으로 표시된다. 이들 브랜드 상품은 추청과 오대쌀, 고시히까리 등 단일품종을 내세워 20kg 기준 5만~6만원씩 고가의 마케팅 전략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양곡표시제는 포장된 쌀의 전체 분량 가운데 80% 이상이 단일품종일 경우 나머지 20% 품종에 관계없이 단일품종으로 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실제로 유명 브랜드 쌀의 경우 단일품종 비율이 90% 안팎에 불과하다.

단일품종 50%, 일반품종 50%가 섞인 포장 쌀은 '혼합미'로 표시해 판매할 수 있다. 이들 혼합미는 보통 20kg기준 4만원 안팎에 판매된다.

국내 대형 할인매장에서 할인행사용으로 판매되는 저가의 포장 쌀은 대부분 혼합미로
국내 쌀 유통물량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 롯데상사, 쌀 도정판매 사업 진출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자료사진)
롯데상사는 농협으로부터 현미를 공급받아 백미로 도정하는 '라이스센터'를 건설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라이스센터는 기존의 RPC처럼 쌀을 직접 도정한 뒤 포장지에 담아 판매하는 일종의 완제품 공장인 셈이다.

도정 처리 물량은 국내 전체 쌀 생산량의 0.5%에 달하는 연간 2만톤 규모로 단일 공장으로는 국내 최대 수준이다.

롯데상사는 단일품종의 쌀을 롯데상표가 붙은 포장지에 담아 20kg기준 5만원 중반대 가격에 판매할 계획이다. 기존 브랜드 쌀 가운데 중간 정도 가격에 해당된다.

롯데상사 관계자는 "고품질의 단일품종 쌀을 소비자들이 믿고 사서 먹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저가의 혼합미와 차별화한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 결국은 "골목상권 죽이기"…"롯데마트가 쌀 시장 교란시켜 놓고 딴 소리"

중소 민간RPC와 농민단체들은 롯데상사가 추진하는 쌀 도정판매 사업이 결국에는 '골목상권 죽이기'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민간RPC 관계자는 "롯데가 도정사업에 뛰어들면 홈플러스와 이마트 등 나머지 대형 유통업체들도 자체 도정공장을 짓고 쌀을 직접 판매하게 될 것"이라며 "중소 RPC는 다 죽게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롯데가 벌써부터 단일품종의 쌀을 저렴하게 판매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결국 단가를 맞추기 위해선 산지가격을 후려칠 수밖에 없게 돼 농민들도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RPC 관계자는 "롯데마트가 그동안 쌀 할인행사를 통해 쌀의 품질과 가격을 떨어트려 놓고 이제와서 고품질, 고가 전략을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 없다"며 "쌀을 팔아 이윤을 챙기겠다는 장사논리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국회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롯데그룹의 쌀 도정사업 진출을 자제하도록 촉구한 바 있다.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은 "지난해 사업 중단 이후 아무런 환경 변화도 없는데 불과 몇 달 만에 입장을 번복한 것은 국정감사만 피해가고 보자는 이기적인 태도로 국회와 국민을 우롱하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황 의원은 "롯데상사의 도정업 진출은 새로운 수요 창출이 아닌, 기존에 하던 산업에 대자본이 뛰어들어 상품의 가격 혼란만 가중시키는 것으로 전형적인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롯데상사 관계자는 "이번 도정사업 진출 계획은 생산자 농민에게는 제값을 주고 구입해서 소비자에게는 좋은 품질의 쌀을 공급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며 "중간 유통 구조인 RPC에 대해선 크게 검토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