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 초기에는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 러시아도 강도 높은 제재에 동참할 것처럼 보였으나 전열은 금세 와해됐다.
미·중간 지역내 패권 갈등이 근본 원인이겠지만 북핵 문제의 제1당사자인 우리로선 누구를 탓할 여유조차 없다.
무엇보다 정부는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상실한 채 오히려 미·중간 알력에 휘말려들면서 어렵게 쌓은 ‘균형외교’의 결실까지 까먹었다.
윤병세 외교장관의 말마따나 ‘국제사회 대 북한’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무위로 돌리고 게도 구럭도 다 잃는 실책을 범하고 만 것이다.
반면 북한은 판세를 꿰뚫는 영리하면서도 대담한 행보로 미·중간 틈새를 파고들며 전략적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북한이 8일부터 25일 사이에 장거리 미사일을 쏠 수 있다고 예고한 것도 안보리 제재 결의안 도출 시점은 물론 다음달 한미연합훈련 등까지 계산에 넣은 고도의 책략으로 보인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주도권을 되찾고 미·중을 다시 단일대오에 불러내기 위해서는 먼저 통렬한 반성과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
중국을 끌어낼 복안도, 실패할 경우의 대안도 없이 무작정 ‘혹독한 대가’ 운운하며 말 폭탄만 터뜨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답이 멀리 있지도 않다. 사실 정부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다만 잊고 있을 뿐.
박 대통령이 미국 등의 우려를 뒤로 하고 당시 천안문 성루에 오른 것은 북핵 해결과 통일 과정에서 중국의 협조가 무엇보다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박 대통령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미국과 중국의 셈법을 절묘하게 조율해낸 것으로 평가된다.
‘의미 있는 6자회담’은 북한이 진정성을 선제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미국을 의식했고,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는 조건 없는 대화 재개를 요구하는 중국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미·중간의 간극이 벌어진 현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이 같은 조율사 역할을 다시 요구받고 있다.
물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검토 등으로 한·중 관계까지 싸늘해진 상황에서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것 외에 대안이 없다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안보리 제재에 실패해도 최근 미국 상원을 통과한 북한제재법안이 중국을 압박할 수 있을 것이란 일각의 기대는 한반도 신(新)냉전 기류를 강화하고 상황만 더 악화시킬 것이다.
이 법안은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에 대해서도 3자 제재(secondary boycott)를 가할 수 있다.
이런 악순환 고리를 피하고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선 중국의 ‘오해 아닌 오해’를 푸는 게 급선무다.
특히 박 대통령이 거론한 5자회담은 북한을 배제함은 물론 중국이 의장 격인 6자회담 폐지론으로 읽히면서 중국이 반발하는 사안이다.
일각에선 5자회담(협의)이 6자회담의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잘 인식시킨다면 오히려 미·중간 절충을 위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을 대화의 자리에 나오게 하고, 다시 북한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5자회담(협의)의 선제적 개최와 그것이 6자회담으로 이어지도록 미·중 사이에서 조율해 나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북한과의 대화를 꺼리는 미국, 압박 결핍의 중국을 설득해내려면 우리부터가 대화·압박의 유연한 투트랙 기조를 복원하는 것이 시급하다.
중국은 남중국해와 대만문제까지 포함한 큰 그림 속에서 미국을 상대하는데 아무런 보상이나 유인책도 없이 제재·압박을 외친다고 중국이 들어줄리 만무하다.
제재 일변도의 화풀이식 대응은 4월 총선을 앞둔 국내 정치용으로는 효험이 있겠지만 냉엄한 동북아 질서에서 우리 스스로의 입지만 좁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