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폰을 잡은 조정래 감독이 처음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에 관한 영화를 찍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우연한 계기로 '나눔의 집'에 봉사를 갔던 그는 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이라는 그림을 보고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일 간의 어떤 갈등이나 정치 상황도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겪은 아픔보다 중요할 수 없었다.
"이건 한일 양국의 관계 등 정치적인 의도를 담거나 일본을 고발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결국 돌아오지 못하신 '위안부' 피해 여성분들이 영화 속에서나마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든 영화입니다. 그 분들이 이 영화로 마음 한 자락이라도 풀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나치의 홀로코스트처럼 '위안부' 문제는 우리가 계속 되새겨야 할 전쟁 범죄고, 인권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조정래 감독은 시나리오 작성을 마치고, 12년에 걸쳐 영화를 준비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크라우드 펀딩'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금액을 보내 온 75,270명의 이름이 빼곡히 올라간다.
제작비를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은 것처럼, 배우들과 스태프들 역시 재능기부로 뜻을 모았다. 관록의 배우 손숙, 오지혜, 정인기 등은 물론이고, 재일교포와 일본인 배우들이 자비로 비행기에 올라 한국 땅을 밟았다.
재일교포 4세인 배우 강하나는 '위안부'에 끌려간 소녀 정민 역을 맡아 주인공으로 열연했다. 일본인 배우들은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지만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조정래 감독은 지금도 그들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을 지울 수가 없다.
"일본인 배우 분들이 일본군으로 출연해 열연을 해주셨는데 편집 과정에서 이야기 흐름과 러닝타임을 이유로 안타깝게 사라졌어요. 어떻게든 살리려고 했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이해해 주셨습니다. 그 분들도 틀림없이 함께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엔딩 크레딧에도 이름이 있어요."
"영상을 보여드릴 때, 기쁘지 않고 오히려 가슴이 떨렸어요. 그냥 고개를 내내 숙이고 있었습니다. 상영회가 끝나고 할머니들이 많이 우셨어요. 좋은 말씀도 해주셨고요. 남자로서 저 역시 죄의식이 있고, 그것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할머니들께서는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함께 계셨어요. 그 사이에 일본에도 가시고, 유엔에 청원도 하셨죠. 이제 개봉이라는 큰일을 앞두고 또 '나눔의 집'에 갈 겁니다. 이번에도 할머니들에게 이야기를 여쭤보고 싶고, 앞으로도 노력할 거예요."
정식 개봉은 국내가 처음이지만 이미 미국에서는 후원자들을 위한 상영회가 한 차례 진행됐다. 재미교포들을 포함, '울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하는 미국인들도 눈물을 쏟아냈다. 어린 소녀들이 잔혹하게 유린당한 비극은 단지 우리만의 역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조정래 감독은 일본 관객들도 만났다.
"와세다 대학을 다니는 일본 여자 대학생이 영화를 봤습니다. 오열을 하면서 제게 계속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사실을 몰랐던 것이 부끄럽고 많은 일본인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일본 보수 잡지사의 한 기자는 '여자로서 너무 고맙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20만 명 중 불과 238명 만이 다시 고국 땅을 밟았다. 생존자들은 그들이 목격한 죽음을 기록했다. 그러나 할머니들의 '증언집'을 보고도, '증거가 없다'고 하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조정래 감독은 이 때문에 영화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증언집에는 수많은 학살에 대한 기록들이 존재합니다. 그건 죽음의 기록인데 동시에 산 사람의 기록이기도 해요. 제일 많이 화가 났던 것이 ('위안부' 문제에) 증거가 없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분명한 증거가 많이 있습니다. 생존자들의 증언도 증거가 되지 않는데 그렇다면 내가 문화적 증거로 만들겠다고 생각했죠. 이건 정말 가슴 아픈 일이잖아요."
힘들지만 해야 하는 일, 잊고 싶지만 기억해야 하는 일 그리고 잊고 싶어도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일. 우리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위안부'란 그런 의미다. 그만큼 '귀향'은 힘든 영화이지만, 우리가 끝내 기억하고 지켜봐야 할 영화이기도 하다. 14년 간의 기다림 끝에 '귀향'은 오는 24일 관객들에게로 날아들 준비를 마쳤다.
조정래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서 '소녀들'에게 들었던 가장 무섭고도 당연한 이야기는 이것이었다.
"이 영화를, 우리의 이야기가 알려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 그것만큼 무서운 명령이 없었습니다. 이 영화를 많이 알 수 있게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