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을 이끌었던 이대호(34)와 박병호(30 · 미네소타)가 그렇다. 야구 강국 한국과 일본을 평정한 타자들로 야구 본토 미국에 나란히 진출했지만 일단 현재 팀의 입지와 위상은 상이하다.
대표팀 4번 타자 이대호는 마이너리그 단년 계약을 맺은 가운데 뒤를 받쳤던 박병호는 장기 계약을 이뤄냈다. 이대호가 또 한번의 시험대를 거쳐야 하는 반면 박병호는 사실상 빅리그 출전이 보장된 상황이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이대호 1년 마이너 계약-박병호 4년 기본 보장
이대호는 4일(한국 시각) 시애틀과 계약이 공식 발표됐다. 메이저리그 홈페이지는 "시애틀과 이대호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고 전했다. 일단 빅리그 40인 명단에는 들었지만 개막 25인 로스터에 들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스프링캠프를 통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빅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다. 시애틀은 이대호가 맡을 수 있는 지명타자와 1루수 주전이 확실하다. 2년 연속 40홈런 이상을 날린 넬슨 크루즈는 부동의 지명타자다. 1루수는 지난해 밀워키에서 영입한 20홈런 타자 애덤 린드가 버티고 있다.
메이저리그 홈페이지는 "이대호가 린드와 함께 플래툰 시스템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좌투수에 약한 좌타자 린드를 상대적으로 좌완에 강한 이대호가 보완한다는 것이다. 빅리그 명단에 들어도 일단 주전보다 벤치 멤버에 무게가 실리는 형국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계약 기간이다. 4년 보장에 5년까지 채울 수 있다. 그만큼 박병호의 존재감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박병호도 마이너리그 거부권은 없으나 벌써부터 현지 언론에서 주전 지명타자로 분류된다. CBS스포츠는 박병호를 30개 구단 중 '올해의 지명타자 10위'에 올리기도 했다.
이대호는 빅리그 옵션을 채우면 최대 400만 달러(약 49억 원)을 받지만 마이너리그 강등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2년 700만 달러 계약을 맺은 김현수(28 · 볼티모어)도 주전급으로 분류되지만 이대호는 엄연한 1년 마이너리그 계약이다.
▲"적잖은 나이-느린 발, MLB 구단 갸우뚱"
지난해 이대호는 일본 정상급 타자였다. 지난해 141경기 타율 2할8푼2리 31홈런 98타점을 올리며 소프트뱅크의 2년 연속 일본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다. 야쿠르트와 일본시리즈에서 타율 5할 2홈런 8타점으로 시리즈 MVP까지 올랐다.
소프트뱅크가 3년 최대 18억 엔(약 183억 원)의 최고 대우를 제시한 이유였다. 4년 동안 일본에서 4시즌 570경기 타율 2할9푼3리, 98홈런, 348타점을 올린 꾸준함의 대명사였다. 4년 연속 KBO 리그 홈런-타점왕에 오른 박병호에 비해 결코 손색이 없는 활약이었다.
하지만 다소 많은 나이와 느린 발이 약점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송재우 메이저리그 전문 해설위원은 "국내 팬들 입장에서 이대호의 계약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30대 중반에 접어든 이대호를 냉정하게 평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거구인 만큼 느린 까닭에 수비에 대한 의문부호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대호의 11년 KBO 리그 통산 도루는 9개다. 한 시즌 최다 홈런은 2010년의 44개. 통산 타율 3할9리의 정교함은 갖췄지만 30홈런 이상이 1번뿐이었다는 점도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부분이다. 송 위원은 "2개 이상 구단이 이대호에게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쉽지 않은 상황이었고 이 중 가장 좋은 조건을 시애틀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히려 이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1년 계약인 만큼 올해 한국, 일본에서 보인 것처럼 발군의 활약을 보인다면 더 큰 금액과 조건으로 계약할 수 있다. 4년 계약을 맺은 박병호보다 유리할 수 있다. 송 위원은 "린드와 플래툰 시스템을 신경쓰지 않고 우투수에게도 강한 면모를 보여 출전 경기를 늘려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소 다른 출발선에서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을 맞는 이대호와 박병호. 과연 올 시즌 뒤 평가가 어떻게 달라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