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은 그동안 대박을 터뜨린 FA(자유계약선수)들에 이어 거액의 외인 선수들까지 등장한 게 특징이다. 최근 몇 년 동안 FA 시장이 매년 최고액을 경신한 가운데 연봉 20억 원이 넘는 외인까지 등장해 사상 최대의 돈잔치가 펼쳐졌다.
지난 시즌 FA 시장에서는 무려 766억2000만 원의 돈이 풀렸다. 박석민(NC)이 4년 최대 96억 원(이하 4년 기준)으로 역대 최고액을 새로 썼고, 정우람(한화)은 불펜 투수임에도 선발 최고 수준인 84억 원에 계약했다. 역시 84억 원의 김태균(한화), 60억 원의 손승락(롯데) 등 FA 21명이 지난해 FA 시장 최고액인 720억6000만 원(20명)을 훌쩍 넘겼다.
천정부지 몸값은 국내 선수들에 국한된 게 아니었다. 외인들도 FA에 버금가는 연봉에 KBO 리그로 몰려들었다. 현역 메이저리거로도 뛸 만한 선수들도 있다.
한화는 지난 시즌 중반 합류해 괴물로 군림한 에스밀 로저스와 총액 190만 달러(약 23억 원)에 붙들었고, 지난해 빅리그에서 뛴 윌린 로사리오도 130만 달러(약 15억7000만 원)에 데려왔다. KIA 역시 최근까지 빅리그에서 활약한 헥터 노에시를 20억 원 몸값에 불렀다.
▲가파른 FA 인플레이션 '100억 시대 눈앞'
최근 FA 인플레이션은 가파르다. 2012시즌 뒤 FA 시장 총액은 11명 242억6000만 원이었다. 그러나 1년 만에 시장은 2배 이상 폭발했다. 15명이 523억5000만 원을 찍었다. 강민호(롯데)가 75억 원으로 2005년 심정수(은퇴)의 역대 최고액 60억 원을 돌파했고, 정근우, 이용규(이상 한화)가 70억과 67억 원을 기록했다.
사상 최대 돈잔치는 이어졌다. 2014시즌 뒤 FA 시장은 700억을 넘어섰다. 90억 원의 윤석민(KIA), 86억 원의 최정(SK), 84억 원의 장원준(두산), 80억 원의 윤성환(삼성) 등 최고액이던 강민호를 넘는 선수가 쏟아졌다. 그러더니 2015시즌 뒤 다시 760억 원을 넘긴 것이다.
이런 몸값 폭등은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KBO 리그의 인기와 파이가 커졌다는 방증이라는 의견과 함께 과연 리그 현실에 맞는 액수냐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이대로 가다간 각 구단들이 몸값 부담으로 운영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걱정이 야구계 핵심 인사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의 수장인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도 근심이 적지 않다. 한 체육계 인사는 "최근 구본능 KBO 총재가 '선수들 몸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면서 '이러다가 KBO 리그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다'고 걱정하시더라"고 귀띔했다. 한 현직 감독은 "이렇게 몸값이 뛰다간 구단들이 운영을 포기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도 했다.
▲외형 팽창? 내실은 점점 약해진다
물론 구단들이 능력이 되기 때문에 그만한 돈을 내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KBO의 한 관계자는 "FA가 되기 위해 노력해온 선수들의 의견은 또 다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야구의 현실과 규모에 맞는 몸값인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더 많다. 일부 선수들에만 집중된 기형적 몸값과 빈익빈 부익부가 극심한 왜곡된 시장이 결국에는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는 냉정한 판단이다.
KBO 리그는 외형적으로는 팽창했지만 내실의 단단함은 갈수록 약해지는 모양새다. 지난해 KBO 정규리그는 역대 최다인 762만여 명의 관중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는 10구단 체제로 경기수가 늘어난 까닭이 크다. 9구단 체제보다 140경기가 늘어나 관중도 늘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평균 관중은 준 게 현실이다. 지난해 1만222명은 역대 1~4위였던 2012년 1만3451명, 2011년 1만2800명, 2014년 1만1301명과 2013년 1만1183명에 못 미쳤다. 경기는 늘었지만 관중은 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KBO 리그의 몸값은 치솟고 있는 것이다. 세금과 환율 등을 고려하면 FA 고액 선수들의 몸값은 박병호, 김현수 등 해외파들에 결코 처지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관중 수와 수익에서는 메이저리그나 일본에 뒤지는 KBO 리그가 몸값에서는 버금가는 현실인 것이다. 한 해 100억 원 이상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현재 야구단 재정이 더 나빠진다면 운영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삼성 변화의 의미 "생산성에 주력해야 할 때"
이런 위기감에 구단들도 달라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10년대 최강팀으로 군림하는 삼성이 대표적이다.
삼성은 최근 몇 년 동안 FA 등 거물급 외부 선수 영입은 없었다. 또 최근 야구단 주체가 그룹에서 제일기획으로 이관되면서 효율적인 구단 운영이 강조되고 있다. 이미 축구와 농구단 등 운영을 해온 제일기획은 수익 창출과 자생력 강화 등을 키워드로 꼽았다.
삼성 스포츠단 출신의 한 인사는 "한때 삼성은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스포츠단 운영에 1년에 1000억 원 정도를 쓰기도 했다"면서 "사회 환원과 그룹 홍보 차원이었지만 우승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돈을 풀었다"고 말했다. 야구단도 2000년대 초반 김응용 감독을 비롯해 심정수, 박진만, 임창용 등을 거액에 데려와 한국시리즈 우승의 한을 풀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최근에는 기조가 크게 달라졌다"면서 "IMF 시절보다 세계 경제 상황이 더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는 요즘 삼성도 스포츠단 운영을 예전처럼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그룹 홍보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세계적인 기업"이라면서 "스포츠단도 돈만 쓰는 게 아니라 나름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FA들의 몸값 상승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 있다. 좋은 선수들이 없기 때문에 돈이 몰리는 까닭이다. 저변을 넓혀 선수들을 키워낸다면 어느 정도 몸값 거품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허구연 KBO 야구발전위원장은 이런 지론을 수년째 펼쳐온 인물이다. 허 위원장은 "FA 시장의 과열은 선수들이 부족한 때문"이라면서 "그렇다면 선수들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FA 거품도 빠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구단들이 성적 지상주의에 매달려 있다"고 지적한 뒤 "FA들에 쏟아붓는 수백억 원을 아마추어 야구 지원에 써 고교 팀을 100개 정도까지 늘리면 선수들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1년 10억 원 이상 연봉 선수들이 쏟아진 2016년 KBO 리그. 과연 이들이 몸값이 걸맞는 활약을 펼칠 수 있을지, 또 해외파들의 공세에 최고 프로 스포츠의 인기를 이어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