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비박계 초·재선 의원들이 중심이된 이날 모임은 김무성 대표의 비서실장인 김학용 의원이 주선했고 김 대표도 초청 형식으로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20대 총선, 특히 공천을 앞두고 비박계 현역 의원이 50여 명이나 모였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참석 대상에서 제외된(?) 친박계가 발끈하고 나섰다. 친박계는 "당 화합에 앞장서야 할 당 대표가 계파간 줄세우기를 하고 있다"며 김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총선 공천을 앞두고 특정 계파가 대규모 모임을 가졌다는 점에서 계파 세(勢)결집, 혹은 세과시로 보는 것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계파간 갈등 문제는 차치하고도, 이날 모임이 부적절한 이유는 바로 새누리당의 20대 총선 공천이 철저하게 현역 의원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 공천 앞둔 대규모 회동 "4년 전이었으면 진상조사감"
4년 전으로 돌아가 19대 총선을 앞둔 2012년 1월 31일,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1년여 뒤 국무총리로 지명되는 정홍원 변호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을 발표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 사건,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 등으로 위기에 처한 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계로 개편한 뒤 구성된 공천심사위원회는 바로 컷오프(Cut Off·공천배제) 작업을 본격화했고 많은 현역 의원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졌다.
그렇다면 당이 위기에 처해 현역 컷오프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던 4년 전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이날처럼 특정 계파를 중심으로 현역 의원들이 대규모로 모이는 일이 가능했을까?
한마디로 '절대 불가'다. 한 당직자는 "모임의 성격이 어쨌든 간에 공천을 앞두고 공천심사 대상인 현역 의원들이 대규모로 모이는 것은 당연히 세결집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면서 "공심위가 가동됐다면 진상조사감"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실을 모를리 없는 현역 의원들이 자신있게 모임을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새누리당이 공천 원칙으로 내세운 '100% 상향식 공천' 때문이다.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명분을 내세운 상향식 공천은 밀실에서 이뤄지는 권력자에 의한 사천(私薦)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반면, 100% 경선으로 후보를 공천하기 때문에 조직력과 인지도에서 앞선 현역 의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다. 따라서 현역 의원 입장에서는 계파 세결집이라며 떠들든 말든 공천에서 떨어질까봐 눈치볼 이유가 없다.
이날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하나같이 김 대표가 정치 생명을 걸고 쟁취해낸 상향식 공천에 대해 호평을 내놓았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대표 덕에 일찍 경선을 준비하면서 예전 같으면 골프 치고 놀 시간에 일찍 지역구 관리도 하고 정말 좋은 제도"라고 농을 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김 대표도 "총선에서 반드시 살아 돌아오라"며 이들 현역 의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줬다고 참석자들은 전하고 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살아돌아온다면 이듬해 치러지는 대선에서 든든한 후원군이 될 이들 의원들 하나하나가 김 대표에게 소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공정한 경선관리,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야"
그러나 입장을 바꿔 현역 의원들에게 도전하는 비(非)현역, 특히 정치신인들이 이런 얘기를 듣는다면 이렇게 불공정한 게임이 있을 수 없다.
가뜩이나 현역 의원을 꺾고 공천을 따내기가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인데 공천과정을 공정하게 관리해야할 당 대표가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현역 의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를 만든 것은 부적절하다.
새누리당의 한 예비후보는 "정치신인들은 아침·저녁으로 길바닥에서 추위에 떨며 유권자들에게 한표를 호소하는데 현역 의원들은 따뜻한 식당에 앉아 덕담을 나누는걸 보면 한가한가 보다"고 일침을 가했다.
현재 국회는 선거구획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고 이로 인해 지난 1월 1일부로 선거구가 무효화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따라서 법 대로하면 현재 지역구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예비후보들은 모두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현재 선거구획정이 지연되고 있는데는 파견법 등 다른 쟁점법안 처리와 연계해 획정안을 처리하자고 요구하는 새누리당이 한몫하고 있다. 현역 의원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선거구획정을 고의로 지연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말이 없는 형편이다.
김 대표는 모임 다음날인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새누리당은 지역에서 출발하는 생명력 있는 풀뿌리 후보들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서 정치에 입문하고 우리 정치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당내 경선과정을 더욱 공정하고 투명하게 철저하게 관리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100% 상향식 공천은 현역에게 유리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과거 도전 기회조차 잡지 못했던 풀뿌리 후보, 즉 정치신인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이기도 하다. 따라서 풀뿌리 후보들이 김 대표의 약속을 믿을 수 있도록 말 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상향식 공천이 '현역 기득권 지키기'라는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