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되는데 우리는 왜…" 필리핀 위안부피해자의 눈물

NYT, 일왕 방문 시점 맞춰 필리핀 위안부피해자 실태 조명

"일본 정부는 한국 여성들을 위해 뭔가 했다. 왜 필리핀 여성을 위해서는 그럴 수 없는가?"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가 방문 중인 필리핀의 위안부 피해자 단체 '필리핀여성동맹' 레칠다 엑스트레마두라 사무총장은 29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은 일본에 굽실거린다"며 "(아키노 대통령이 일본에)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NYT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한국 여성들이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성노예가 됐던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악명높다"며 "필리핀 여성 1천명 이상도 성노예가 됐고 약 70명이 생존해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성노예를 강요당했던 한국 여성들에게 공식 사과와 830만 달러(약 99억 원)를 제안했다"며 "그러나 필리핀 등 다른 나라 여성들에겐 공식 사과나 보상을 제의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NYT는 아키히토 일왕이 방문한 필리핀 대통령궁 앞에서 뜨거운 햇볕 속에 서있던 힐라이아 부스타만테(89) 할머니의 사연을 전하면서 그가 1943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15개월 동안 낮에는 식모살이로, 밤에는 성노예로 지옥같은 나날을 보냈다고 소개했다.


힐라이아 할머니는 "일본 정부는 나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한 책임이 있다"며 "나는 지금까지 너무나 치욕스러워 어머니 외엔 나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알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엑스트레마두라 사무총장은 "필리핀 피해자들은 다른 나라 여성들이 받은 것과 같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며 "필리핀 정부가 제대로 옹호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필리핀대학의 리카르도 호세 역사학 교수는 "위안부 문제는 필리핀과 일본 사이의 광범위한 현안에 묻히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주재 일본대사관에 따르면 일본은 필리핀의 최대 교역국이자 최대 지원공여국이다.

1960년대 이후 일본의 대(對) 필리핀 개발 원조 금액은 200억 달러(약 24조 원)에 달한다.

양국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공동 전선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필리핀 대통령 대변인은 일왕 방문 기간에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 수반인 아베 신조 총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호세 교수는 일왕은 선출직이 아니면서 일본의 도덕적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그가 위안부 문제를 인지하고 유감을 표한다면 큰 진전이 될 것"이라며 오히려 일왕이 역사적 문제를 다루기에 좋은 위치에 있다고 봤다.

아키히토 일왕은 이번 방문 기간에 끝내 위안부와 관련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아키히토 일왕은 전날 2차 대전 당시 필리핀에서 숨진 일본인을 위해 필리핀 라구나 주에 세운 전몰자 비(碑)를 찾아 헌화했다.

아키노 대통령과 만나서는 전쟁 중 일본군의 잔학행위에 대해서만 유감을 표명했고, "필리핀에서 많이 팔리는 일제 차량 때문에 마닐라의 교통이 악명 높다"는 농담을 건넸다고 한다.

엑스트레마두라 사무총장은 "대통령과 일왕이 농담은 할 수 있고, 피해 여성들에게 일어난 일은 말할 수 없다는 것인가"라며 분개했다고 NYT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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