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지난 6일 ‘수소탄’ 실험을 전후한 북한 행적은 기획과 실행, 사후대응에 이르기까지 치밀함이 엿보인다.
북한은 올해 신년사에서부터 핵 도발을 준비했다. 의도적으로 ‘핵’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기습 효과를 배가시켰다.
과거와 달리 유일 동맹국인 중국에도 사전통보하지 않았다.
이유를 놓고 여러 분석이 나오지만, 당초 지난해 4차 핵실험을 하려다 한미 양국에 사전 포착되고 중국 압력에 포기했던 사정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한미 양국 정보망도 완벽히 속임으로써 다른 부대 수익을 함께 챙겼다.
우리가 ‘킬 체인’ 등 억지력을 갖춘다 해도 이를 피해 은밀하게 핵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 위협한 셈이다.
물론 중국조차 따돌린 것은 북한에도 부담이다. 가뜩이나 북중관계가 냉랭한 가운데 중국이 이번에는 그냥 보아넘기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때문에 4차 핵실험은 처음에 김정은 정권의 ‘자살골’ 쯤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결과는 딴판이다. 여전히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는 중국은 한미일의 고강도 대북제재 요구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중국은 특히 지난 연말 일본군 위안부협상 타결 이후 한미일 공조가 강화될 조짐을 경계하는 눈치다. 대북제재 요구를 자신에 대한 압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8일 윤병세 외교장관과 통화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란 북핵 3원칙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며 ‘결일불가’(缺一不可)를 강조했다.
북한이 중국의 의중을 꿰고 있음은 물론 향후 전개 방향까지도 대충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도발 이후 사후관리 측면에서도 전략적 대응을 하고 있다.
우리 군의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B-52 폭격기의 한반도 전개 등 미국의 무력시위에도 애써 태연한 모습이다. 한미 양국군 움직임에 발작적 반응을 보였던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정은 정권의 대외·대남 정책이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우리 정부는 북핵 실험을 사전포착하지 못한 것은 물론 핵도발 가능성 자체를 낮춰보는 오판을 했다.
사후 대처에서도 ‘역대 최상 관계’ 중국을 과신하다 뒤통수를 맞았고 급기야 ‘5자회담’ 추진을 운운하다 반나절만에 거둬들이는 외교 망신까지 자초했다.
더 큰 문제는 압박 일변도 외골수 정책기조에 매몰돼 향후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이 줄어든 것이다.
중국을 움직일 복안도, 유엔 안보리 제재 협상 결과가 미흡할 경우의 대안도 없는 장기전략 부재 상태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36년만에 열리는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핵 보유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전격적 노선 변화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5월 당대회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의 종결을 선언하면서 개혁개방이 가미된 노선을 제시하고 평화협정을 위한 북미대화를 제안할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