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썰매의 자존심’ 강광배, 덧씌워진 그림자 벗다

강광배 교수는 한국 썰매종목의 살아있는 역사로 통한다. 최근 국가대표팀 훈련비 횡령 등 비위 혐의로 송사에 휘말렸던 그는 기소유예로 마음의 짐을 덜었다. 황진환기자
한국 썰매는 그동안 세계의 정상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전폭적인 투자를 통해 최근에는 스켈레톤과 봅슬레이 등 여러 종목에서 세계 정상급 수준까지 기량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얼마전 봅슬레이의 원윤종, 서영우가 월드컵 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출신이 봅슬레이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동계올림픽의 메달이 빙상 종목에 집중됐던 것과 달리 썰매 종목에서도 올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걸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근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여전히 비인기 종목인 한국 썰매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1998년 일본 나가노 대회가 한국 썰매 종목의 첫 동계올림픽 데뷔전이었다. 강광배 한국체대 교수가 루지에 출전해 34명의 참가 선수 가운데 31위에 오르며 ‘한국 썰매 종목의 선구자’가 됐다.

이후 강 교수는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나는 등 썰매 종목의 매력에 푹 빠졌고, 스켈레톤과 봅슬레이까지 차례로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덕분에 지난 2010년 밴쿠버 대회 때 봅슬레이 4인승에 출전한 강 교수는 세계 최초로 올림픽 썰매 종목에 출전한 선수로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선수 은퇴와 동시에 강광배는 교수로, 또 국가대표 지도자로 후배 양성에 나섰고, 아시아인으로는 가장 먼저 국제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지난 20여년의 한국 썰매종목의 발전을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강광배였다. 하지만 강 교수는 최근 1년 넘게 송사에 시달렸다.


지난해 6월부터 강 교수는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아야 했다. 일부 체육계 인사가 강 교수가 국가대표 훈련비를 횡령하고, 모친이 운영하는 펜션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잡일을 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오랜 수사 끝에 검찰은 최근 강 교수 관련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다. 누명을 벗은 것이다. 되돌려 받은 봅슬레이 구매 대금의 일부는 부품 사용비로 사용했고, 코치의 수당을 갈취했다는 혐의 역시 선수단의 동의를 얻어 선수들의 물리치료비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강 교수의 모친이 소유한 펜션을 국가대표 선수들이 숙소로 사용하고 강제노역을 시켰다는 의혹 역시 문제 없음으로 결론났다. 당시 국가대표 공식 훈련 기간이 아닌 상황에서 해당 펜션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되자 휴식 시간을 이용해 보수 작업을 도왔다는 것이 선수들의 진술이었다.

광고 촬영료와 연맹 지원금을 개인 계좌에서 관리하며 사적인 용도로 썼다는 의혹이 마지막까지 문제가 됐지만 그동안 열악했던 한국 썰매 종목의 특성상 강 교수가 사비를 털어 한국 썰매의 발전에 기여한 점 등이 인정돼 이 문제는 초창기 미숙한 회계 관행때문으로 정리가 됐다. 실제 강 교수의 신용카드 지출 내역 중에는 상당수가 훈련비 등 대표팀의 공적 용도로 쓰인 사실이 확인됐다.

강 교수의 이번 논란은 무섭게 성장하는 한국 썰매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것이 체육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번 논란의 중심에는 그동안 썰매 종목의 간판으로 활약한 강 교수와 반대 세력의 팽팽한 힘겨루기가 있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국 썰매 발전에 발맞춰 강 교수 등에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의혹을 제기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동안 한국 썰매종목의 개척자라는 평가를 받아온 강 교수는 1년여의 형사소송에서 벗어나 한국 썰매의 발전에 더욱 매진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스포츠계가 한단계 성숙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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