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가 직접 사과를 하는 것도 아니고 외무장관들끼리의 협상 타결 선언은 대한민국이 어떤 국가인지?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나라 대통령인지를 깊게 생각하게 하는 큰 아픔이였다. 그 배반의 슬픔은 아직도 달래지지 않고 있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와 고관대작들의 무능으로 나라를 뺏기고 점령군의 군화에 꽃다운 나이의 청춘과 꿈은 물론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혔는데도 피해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최종 협상을 선언하는 것 부터가 언어도단(言語道斷)이고 협상의 첫 단추부터 잘못 잠근 것이다.
아직 진상규명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당사자도 아닌 제3자가 나서서 피해자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최종 해결을 운운하는 것은 2차 가해 행위이고 오만(傲慢)의 절정이다. 어떤 피해 문제로 다툼이 있을 때 피해자의 동의 없이 가해자나 제3자에 의한 종결 선언을 해서는 안되지 않나?
이런 가운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위안부 강제연행의 증거가 없다’는 망발(妄發)을 다시 쏟아놓아 위안부 협상 진상에 대한 의구심을 더해주고 있다.
아베 총리는 18일 도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참의원 예산위원회 회의에서 여당 의원의 질의에 답하면서 "이제까지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서 군과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을 (아베 총리 본인의 1차 집권기인) 2007년 각의(국무회의) 결정했는데 지금도 그 입장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군의 관여'에 대해서는 "위안소 설치, 위생관리를 포함한 관리, 위안부 이송에 대해서는 구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것"이라며 "위안부 모집은 군의 요청을 받은 사업자가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아베 총리의 이같은 발언은 지난해 말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상처를 입혔다"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의 발표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물론 당시 합의 내용도 용인할 수도 없지만 합의문 발표 이후 조변석개(朝變夕改)하면서 합의 정신을 어기는 아베 총리의 표변(豹變)함에 분노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한국측을 자극하는 일본측의 망언이 계속되는데도 그들의 주장에 일일이 답변하는 듯한 미온적 수준으로 대처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가 부아(副芽)를 더 치밀게 한다.
또 “일본군 위안부들이 강제적으로 동원된 것은 피해자의 증언과 연합국 문서, 극동국제군사재판소 자료 등 다양한 자료에서 확인된다”면서 “위안부 합의 사항을 성실히 이행하고 이에 반하는 언행을 삼가야 한다”는 기존입장만 되풀이했다.
결코 수용할 수 없는 합의 내용이지만 양국간 합의를 한지 한달이 채 안되는 데도 지난 14일 일본 자민당의 사쿠라다 요시타카 의원이 “군 위안부가 직업으로서의 매춘부였다”는 황당한 주장을 한 데 이어 이번엔 아베 총리가 합의 정신을 파기하고 있는 등 우리 국민을 조롱하는 망언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는 아베 총리나 일본 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입장 표명은 자제하고 ‘합의 이행’만을 강조하고 있다.
외교부는 앵무새인가? 우리 정부는 언제까지 수세적(守勢的)이고 수치적(羞恥的)인 대일 외교를 계속 할 것인가?
우리 정부는 이참에 잘못된 협상을 파기하고 다시 원점에서 위안부 피해 문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물론 다시 협상을 하더라도 정권의 생색내기용이 아니라 피해 자국민을 진정으로 보호하고 국민들의 자존심을 세우는 외교를 해야 한다.
마침 일본안에서도 든든한 원군이 있어 다행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연구 단체인 역사학연구회는 2014년 10월 발표한 성명에서 "일본군의 관여 하에 강제연행된 '위안부'가 존재한 것은 분명하다"며 아베의 주장을 정면 반박한 바 있다.
당시 성명은 납치 형태의 강제연행이 인도네시아 스마랑과 중국 산시(山西)성 등의 사례에서 밝혀졌으며 한반도에서도 피해자의 증언이 다수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성명은 또 "강제연행은 '집에 쳐들어가서 억지로 데려간' 사례에 한정해선 안 되며 감언과 사기, 협박, 인신매매가 동반된, 본인의 의사에 반(反)해 이뤄진 연행을 포함해 강제연행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감언, 사기, 협박, 인신매매 등에 의한 강제연행은 한반도를 비롯한 넓은 지역에서 진행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고 그 폭력성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부연했다.
공연한 기대와 너무 앞서가는 바람인지 모르나 만약 다시 협상에 임한다면 정부는 먼저 피해자에게 물어나 보고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설사 기대하는 수준만큼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더라도 큰 원망을 얻게 되지 않을 것이다. 정말 피해자들을 생각해 최선을 다했다면 협상 관계자들의 노고에 감사할 것이다.
재협상에 앞서 또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두 나라간 공동 진상조사다. 한.일 정부간 협조가 안되면 두 나라의 양식있는 민간 단체들과의 공동 조사를 실시해서라도 새로운 자료 발굴 작업을 하고 이미 갖고 있는 증거자료도 공유를 하면서 두 정부를 압박하고 가해자의 코밑에 들이밀어야 한다. 이미 일본군이 당시 위안부 모집에 군사비밀 명목비용의 돈을 업자들에게 지불했다는 증언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는데 누가 누구에게 돈을 주고 받았는지 계통 조사를 하면 과연 아베의 주장대로 당시 일본군이 위안부 연행에 책임이 없는지는 백일하(白日下)에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협상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 정부에 등록한 피해 할머니는 모두 238명이였으나 세월이 지나며 지금은 46명만 생존해 있고 또 살아계신 분들도 연세가 많기 때문에 가능한 한분이라도 더 생전에 일본이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기 위해서는 협상을 가능한 빨리 매듭지어야 할 것이나 역시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 강제연행 만행을 당한 북한도 중국도 인도네시아 등도 아직 위안부 협상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 그들도 협상을 늦추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국민에게 시키지도 않는 작위적(作爲的)인 배반(背叛)과 권력남용을 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국민을 위해 국가가 행사하는 외교권은 국가의 권리로 존재하는 것일 뿐 정부의 간 합의만으로는 개인의 권리를 소멸시킬 수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10조는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외교부는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국민 개개인의 불가침의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하는’, 즉 국가의 기본 의무를 다하는 외교를 해야 한다. 만약 이번 합의에 법률적 효력이 있다는 것을 현 정부가 계속 주장하고 인정하게 되면 헌법위반 책임을 져야 한다.
‘대한민국이 헌법의 지엄한 가치를 지켜나가려는 나라’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