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말 파샤는 그 시대를 변화시킨 터키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는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망하자 열강에 의해 사분오열될 뻔한 조국 터키를 독립전쟁을 통해 구해낸 영웅이다. 이후 터키 공화국을 건국한 그는 이슬람권에 속한 터키 여성들을 법률과 관습으로부터 해방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한민국에서는 모두가 인정하고 존경하는 국부(國父)가 없는데도 국부 논쟁이 끊일 날이 없다. 한상진·김종인의 국부 논쟁에 좌우 지식인까지 합세하면서 나라가 시끄럽다. '국부다' '국부가 아니다'를 놓고 공방을 벌이며 상대진영의 상처내기로 번진다. 조국 교수까지 등장해 국부 논쟁을 거들 정도로 민감한 문제가 됐다. "이승만 대통령이 국부다"라고 발언한 사람이 자신을 비난한 상대를 향해 "당신은 독재자 전두환 시절 국보위에 참여했던 인물"이 아니냐고 되받아친다.
저마다 ‘우리의 아버지는 이승만이다’ ‘아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김구다’ 하고 싸운다. 우리 아버지가 박정희라는 사람도 있고, 김대중이라는 사람도 있다. 자기가 믿는 아버지를 부정하는 상대방에게 삿대질을 해대며 공격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안 된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도 있다.
언제 태어났느냐를 두고도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1919년에 태어났다는 사람과 1948년 태어났다는 두 부류가 이를 드러내며 싸운다. 가문의 내력만 보자면 콩가루 집안이다. 서로 주장하는 아버지가 다르고 태어난 때도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천하에 불쌍한 고아들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믿음과 신념만 중요하다.
일본은 천황이라는 신(神)적인 국부가 있고, 중국은 쑨원이라는 국부가 있다. 베트남은 호찌민, 미얀마는 아웅 산, 몽골은 수흐바타르, 싱가포르는 리콴유, 프랑스는 드골, 이탈리아는 가리발디가 국부다. 하물며 북한은 김일성이 국부다.
왜 대한민국에는 국부가 없을까? 남녀노소를 떠나 온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아버지가 없기 때문이다. 건국이든 전쟁이든 경제든 그 업적이 아무리 지대하다 해도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면 국부가 아니다. 반쪽만 좋아해도 국부가 아니다. 양쪽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에는 모두가 존경하거나 인정하는 국부가 없다. 업적과 대비되는 중대한 실책과 결점 때문에 찬성과 반대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다. 어쩌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영원히 국부 없이 고아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쑨원은 중국 대륙과 타이완 섬사람 모두가 존경하고 추앙하는 국부다. 1981년 쑨원의 부인 쑹칭링이 죽자 오랫동안 적대시 해온 중국과 타이완 두 나라 대표가 장례식을 합동으로 치르기 위해서 만났다. 중국에서 최초로 공화국을 세웠던 인물이기도 하지만 그의 생애가 고매한 품격과 강한 신념과 조국에 대한 사랑과 정직함과 겸손으로 일관되었기에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던 것이다. 공산주의를 피해 타이완으로 이주해온 보수우파의 중화민국 국민들과 대륙의 공산국가 중국 국민 모두가 쑨원을 국부로 기꺼이 받들고 칭송한다.
국부 없는 사생국 대한민국의 고아들이여! 아버지 없는 것도 서러운데 서로 싸우지는 말자.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그러니 서로 감싸주고 이해하자. 아버지를 잘못 둔 탓, 비애의 한반도 역사 탓이지 우리들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부재한 아버지를 뛰어 넘을 기상과 꿈을 이야기하자. 어느 날 문득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리들의 아버지, 온 국민이 존경하는 대한민국의 국부가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을 담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