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위안부 합의문, 韓日간 '중대한 차이'…실제 발표와도 달랐다

정부, 일본 측 합의문 '왜곡'에 항의·정정 요구는커녕 스스로 모순에 빠져

지난달 28일 타결된 일본군 위안부 협상의 발표 내용을 한일 양국 정부가 서로 다르게 기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협상의 합의 형식을 놓고 벌써부터 법적 효력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발표문의 내용조차 일치하지 않아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지난달 28일 위안부 협상 타결 직후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3개항의 일본측 표명 사항을 낭독했다.

외교부에 공개된 한·일간 위안부 문제 합의
제1항은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 등을 담았고 제2항은 재단 설립을 위한 일본 정부의 예산(10억엔) 출연이 주된 내용이다.


문제는 제3항이다. 기시다 외무상은 “이상 말씀드린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동(同)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실려있는 ‘일한외상회담’ 결과를 보면 “상기 イ(제2항)의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上記(イ)の措置を着実に実施するとの前提で)라고 기술돼있다.

일본 외무성의 공식 입장에 따르면,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의 전제조건은 제2항(일본 정부의 10억엔 출연)만 충족하면 되는 셈이다.

반면 기시다 외무상의 실제 발표 내용(이상 말씀드린 조치)대로라면 일본 측은 10억엔 출연은 당연하고 제1항의 ‘책임 통감’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정신까지 ‘착실히 실시’해야 하는 의무를 부여 받게 된다.

불과 몇 글자 다를 뿐이지만 중대한 해석상의 차이를 낳는 것이다.

외교부에 공개된 한·일간 위안부 문제 합의 내용
물론 양국 간의 이번 위안부 협상 타결은 합의의 형식을 공동기자발표로 하기로 했기 때문에 법적 효력 면에서는 실제 발표 내용이 우선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정부 입장에선 그나마 유리한 위치에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외교부는 일본 측의 합의문 ‘왜곡’에 대해 항의와 정정을 요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스스로도 모순된 입장을 취하며 일본 측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외교부는 18일 현재 홈페이지에 양국 장관의 실제 발표내용과 함께, 일본 외무성이 게재한 것과 똑같은 내용의 ‘합의 내용’을 나란히 싣고 있다.

우리 측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합의 내용을 굳이 게재함으로써 화를 자초하는 셈이다. 하지만 외교부는 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이번 합의가 보다 명확해질 수 있도록 양국 정부가 항목별 조항의 해석을 같이하고 인식이 일치하도록 정리해야 한다”며 “지금 단계에서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외교적 화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학계와 다수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가 문서화된 조약이 아닌 양국 외교장관의 공동기자발표 형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박배근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국립외교원 주최 토론회에서 “이번 합의는 형식이나 여러 가지 점에서 조약이 아니며, 권리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강병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말 그대로 신사협정으로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높다”며 법적 보완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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