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은행 등이 잇따라 가계부채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서자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김용범 사무처장은 지난해 12월 23일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고 "여러 기관이 가계부채 관련 분석을 내놓으면서 너무 위험성만 강조되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계부채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게 김 사무처장의 주장이었다. 특히 김 사무처장이 강조한 게 바로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 개선'이다.
가계부채에서 고정금리·분할상환 비율을 높이는 질적 구조 개선 작업이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13일 대국민담화에서 "가계부채의 질적인 구조가 획기적으로 좋아졌다"며 금융위원회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14일 금융위원회는 2016년 제1차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올해 가계부채 연착륙 방안과 관련해 질적 구조 개선 목표 상향을 내세웠다. 애초 올해 말까지 40%, 내년 말까지 45%로 잡았던 분할상환 비중 목표를 각각 5%씩 올리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정부 내에 분할상환 비중 50% 달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불과 5년 전인 2010년 말 분할상환 비중이 6.4%에 지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 가계부채 질적 구조 변화는 괄목할 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질적 구조 변화에도 가계부채 급증세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 폭은 사상 최대인 78조 2000억 원이었다. 전체 가계대출 증가액의 90%가 주택담보대출이었는데 아파트 집단대출 수요 증가가 주요인으로 꼽혔다.
그런데도 금융위원회는 "은행 여신심사 선진화(주택담보대출 심사 강화)가 올해 가계부채 관리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면서도 집단대출은 그 대상에서 제외했다.
정부는 질적 구조 개선을 내세워 가계부채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주장하지만, 가계부채는 이미 우리 경제의 가장 중대한 위험 요인으로 부상했다.
금융위원회가 2016년도 금융 분야 중점 추진 과제와 관련해 금융 회사와 협회 등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2016년 가장 심각한 대내 위험요인으로 '가계부채 위험 증가'가 선정된 것이다.
전문가 62.3%가 가계부채 위험 증가를 꼽아 '취약업종 기업부실 확대'(17.5%),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5.2%), '기업자금 조달 경색'(4.5%)을 압도했다.
금융위원회가 업무보고에서 밝힌 대로 근본적인 가계부채 문제 해결책은 소득 증대를 통해 가계의 상환 여력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지난해 청년 실업률은 9.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한, 취업자들은 임금피크와 구조조정 압박에 시달리며 소득 증대는커녕 대폭 감소에 내몰리고 있다. 결국, 가계부채는 정부의 질적 구조 개선 '자기만족' 속에 규모가 갈수록 증가하며 폭발력만 한껏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