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끝나갈 무렵이던 낮 12시.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건너편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는 무려 1213번째 수요집회가 시작됐다. 1992년 1월부터 시작됐으니 올해로 25년째를 맞는 집회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비롯해 시민과 학생, 외국인 여성활동가들까지 1천명 가까운 인파가 몰렸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협상이 타결된 지 17일이 지났지만 참가자들은 합의 원천무효를 외쳤다.
한일 양국 정부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라고 강변하지만 정작 피해 당사자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분노와 억울함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당사자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이뤄진 합의는 절대로 반대하며, 일본이 출연하기로 한 10억엔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일본 정부에는 위안부에 대한 범죄 인정과 법적 배상을, 우리 정부에는 졸속 굴욕협상에 따른 대국민사과를 요구했다.
한일 정부간에 체결된 지난해 12.28 합의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 저변에 퍼져있는 반대기류가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끝난 일'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13일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문에는 위안부 문제가 아예 빠졌고, 뒤에 이어진 기자회견에서야 박 대통령은 네차례의 관련 질문에 답변하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더욱이 "최대한의 성의를 갖고 최상의 것을 받아내서 합의가 되도록 노력한 것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문구와 소녀상 이전 논란에 대해 명쾌하고도 확실한 언급을 하지 않았고,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상처가 아물며 마음의 치유가 돼 가는 과정에서 뵐 기회도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말로 두루뭉술 넘겼다.
설상가상으로 14일 CBS 노컷뉴스가 단독 취재한 결과 경찰이 정대협을 집시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수사중인 것으로 확인돼 파문을 낳고 있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수가 사전 신고한 인원보다 훨씬 많아 '신고 범위 이탈'에 해당한다며 정대협 관계자들에 대한 출석요구서 발송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내부가 이런 상황이니 아베 일본 총리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과를 거부하거나 자민당 의원이 '매춘부' 망언을 늘어놓는 것은 아닌가 싶다.
14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자민당의 사쿠라다 요시타카 중의원 의원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직업으로서 매춘부였고, 그것을 희생자인 양 하는 선전공작에 너무 현혹당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과연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 '국민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는 논어(論語) 안연편의 경구를 박근혜 정부는 다시 한번 곰곰이 되새겨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