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 담화, 민심과의 거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대국민담화와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안보와 경제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국민과 정치권에게 협조를 당부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이 계기가 된 자리였지만, 안보보다는 쟁점법안 처리에 훨씬 더 무게중심이 실렸다.

우선, 국내외의 이목이 쏠린 북핵 대응과 관련해서는 중국의 역할론을 강조하고 나섰다. 북핵실험 뒤 으레 안보리 제재가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했건만 중국이 도와 주는 한 실효적인 제재에는 크게 미흡했던 게 사실이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감안해 사드 배치도 국익에 따라 검토하겠다고 언급한 대목은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중국의 역할이 긴요한 만큼 강력한 대중국 압박카드로 읽힌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위기설과 관련해 노동개혁과 경제활성화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저성장의 터널로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는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가 절실하다는 점을 국민에게 직접 호소했다. 노동관련 5법 가운데 기간제법을 중장기 과제로 양보하고 파견법 등 나머지 4개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제안한 것은 최근 한국노총이 합의 파탄 선언을 한 것에 대응해 일종의 절충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민심과 거리가 있고, 정치권과는 지나치게 대립적인 모습을 보였다.

직권상정 여부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던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해 말 '경제는 비상사태가 아니다'라고 언급한 걸 겨냥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안보와 경제가 비상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회와 야당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민의의 전당이 아니다', '국회의 기능을 바로 잡는 일부터 해야 한다'는 발언도 쏟아냈다.


그러나 100% 대한민국을 약속한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국민이 심판해 달라'는 식으로 압박하는 것은 정치적 중립성 훼손 논란을 자초할 수 있고, 진영논리와 편가르기도 키울 우려가 있다. 3권 분립이 엄연히 존재하는 만큼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은 법안 처리를 위해 정치권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구해야지 윽박지를 일은 아니다. 누구의 잘잘못인지는 대통령이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국민이 선거를 통해 심판하는게 민주주의의 작동원리다.

누리과정 예산편성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도 교육청이나 전문가 집단과의 생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 일문일답 과정에서 "교육청이 정치적이고 비교육적 행동을 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 공약인 누리과정이 여러 가지 복잡한 과정을 거쳐 결국 시도교육청에 예산이 떠넘겨진 것은 부적절하다는 게 다수 민심이다.

누리과정이 도입될 당시에는 내국세에 연동돼 있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증가했지만 경기가 하락하면서 교육청으로 넘어와야 할 돈이 제대로 넘어오지 않았다. 또 유보통합 실패로 복지부가 담당하던 어린이집 예산까지 시도교육청이 떠안으며 재정부담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기초연금 공약이 '포퓰리즘'의 원조격인데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성남시나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의 청년수당 지급과 공공산후조리원 제도에 대해 "지자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선심성 사업 마구잡이로 하면 부담은 국가가 진다. 일은 거기서 저지른다"라며 전례없이 강하게 몰아부쳤다. 이 또한 얼굴이 화끈거릴 만한 발언이다.

역사교과서와 관련해서는 기존 교과서가 '부끄러운 역사를 가르친다'며 부정적인 면을 지나치게 과장했다. 박 대통령은 "역량있고 명망있고 집필진으로 구성해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고 거듭 강조하면서도 집필진을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이밖에 한일 위안부 협상에 대해서도 '100%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위안부 관련 단체의 수요집회 개최일이다. 그렇다면 왜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번 합의를 무효로 선언하고 일본측 출연기금 10억엔을 받지 않겠다고 했을까? 대통령의 인식과 민심과의 거리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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