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은 "라면은요?"라며 검사에게 질문했다.
"공용물건이라서 제가 공소를 유지했습니다. 대원들이 먹는 것이기 때문에 공용물건인 게 맞아서…."
재판장은 한동안 말없이 서류만 뒤적였다. 결국 검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니면 뭐, 라면은 정리 가능합니다."
재판장은 그제야 "그럼 그 부분 철회하시죠. 공소사실 범죄일람표에 있는 공용물품 중에서 라면 한 박스는 철회하는 걸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사라진 라면 한 상자는 피고인의 혐의에서 빠졌다.
라면이 문제가 된 건 지난해 4월18일 세월호 1주기 집회 때였다. 경찰관 74명이 다치고 경찰버스 등 71대가 파손되는 일이 벌어졌다.
경찰은 버스 안에 있던 기동복·방패·경찰봉·무전기·소화기가 부서지고 사라졌다고 했다. '피탈·파손 공용물품 목록'에는 라면 한 상자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피고인도 경찰도 검찰도 법원도 이 라면이 컵라면인지 봉지라면인지 어느 회사 제품인지 알지 못했다. 경찰은 "버스 안 물건들이 시위대 난입 후 사라졌다"고만 말했다.
검찰은 세월호 1주기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박래군(55)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을 구속기소하면서 시위대와 공범이라며 부서지고 사라진 경찰 물품에 '특수공용물건손상' 혐의를 적용했다.
이 사건 변호를 맡은 박주민 변호사는 "라면 한 박스를 넣은 건 '시위대가 이런 물건도 가져간다'며 도덕성을 공격하려는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재경지법 한 판사는 "증거도 없이 '누군가 라면을 가져가는 걸 봤다'는 정도의 전의경 발언을 근거로 기소했다면 검찰의 공소권 남용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