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은 '쉬운해고'와 임금피크제 등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 등 양대 지침과 노동법 입법 등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 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일정대로 강행한다는 방침이어서 다음주 노사정위 탈퇴가 이뤄질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노총회관에서 노총 임원들과 산별노조 위원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노사정 합의 파기 여부를 논의했다.
한국노총은 4시간 넘는 격론 끝에 회의를 벌인 뒤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합의를 파기해 노사정 합의가 파탄났음을 확인한다"면서 "노사정위 탈퇴 등 향후 투쟁은 김동만 위원장이 일주일 동안 정부와 논의한 뒤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또 "오는 19일까지 정부가 노사정 합의 정신에 맞게 양대 지침과 5대 법안을 논의할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지 않으면 기자회견을 통해 향후 투쟁계획을 발표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에 책임돌리고, 일주일뒤 탈퇴 수순>
특히 '파기'가 아니라 '파탄'을 선언한 것에 대해선 "노사정 합의를 깬 주체가 노총이 아니라 정부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며, 5대 법안과 양대 지침을 원점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노사정 대타협이 깨진 실질적인 책임을 정부에 돌리면서 일주일의 시간을 유보한 뒤 노사정위를 탈퇴하겠다는 수순으로 읽혀진다.
이날 회의에서는 노사정 합의 파기 여부를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졌다.
금속노련, 화학노련, 공공연맹, 금융노조 등 주요 산별노조들은 노사정 대타협 파기를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자동차노련 등 일부 온건 노조는 시간을 두고 보자는 유보적인 주장을 내놨다.
'쉬운해고'는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를 가능하게 하는 것을,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는 임금피크제 등 노동자에게 불리한 사규를 도입할 때 노조나 노동자 과반수 동의를 받도록 한 법규를 완화하는 것을 뜻한다.
그동안 한국노총은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요건과 관련한 양대 지침을 정부가 지난해 12월 30일 협의 없이 발표한 것은 대타협 합의를 깬 것이라며 철회를 요구해왔다.
고용노동부는 앞서 노동계를 최대한 설득하겠지만 협의가 이뤄지지 못하더라도 일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동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한국노총이 중집에서 5대 입법안에 대한 일부 이견과 양대지침의 협의 과정을 이유로 대타협 근본취지를 부정하는 파탄선언을 하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마치 그 책임을 정부에 돌리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5단체는 한국노총이 대타협 파기선언을 철회하고 노사정 대화기구에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
노사정위원회도 "이번 사태가 양대 지침 문제로 초래된 점은 개탄스러운 일"이라며 "지침은 핵심적이거나 치명적인 사안도 아니고 대타협에서 극히 지엽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협의도 없이 전체를 부정하려는 것은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한국노총의 결정에 대해 노동계도 비판적인 모양새다.
민주노총은 논평을 통해 "한국노총이 단호한 결정을 내리길 바랐으나 오늘 결정은 끝내 이에 미치지 못해 유감"이라며 "좌고우면할 때가 아니며 정부발 노동개악 앞에 노동자들의 운명이 달린 지금, 노조의 선택은 투쟁 외에는 없다"고 밝혔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위원도 "그동안 노사정 합의 과정과 관련한 일련의 과정을 보면 총선을 앞두고 전형적인 실리주의 노동운동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며 "9월 노사정 대타협 당시와 이번 파기 이후에 변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한국노총은 노동계나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으면 비판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