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배임죄 무죄 '작심비판' 속내는?

대대적 사정 앞둔 강경대응

11일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자 법원의 판결을 비판했다. (사진=조은정 기자)
법원이 경영진의 배임죄를 엄격하게 해석하며 주요 사건에 무죄를 선고하자 검찰이 공개적으로 법원을 비판하면서 배임죄가 화두에 올랐다. 모호한 배임죄의 처벌규정을 명확히 하자는 주장과 이에 반대하는 주장이 사회적으로 엇갈리는 상황에서 검찰이 전면에 나서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 작심하고 마이크 잡은 이영렬 지검장, "경영판단 폭넓게 해석 안돼"


사실상 검찰 내 서열 2순위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11일 오전 11시 예고 없이 기자실에 내려와 카메라 앞에 섰다. 이 지검장은 법원이 지난 8일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데 대해 작심하고 비판했다.

이 지검장은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석유개발회사 하베스트의 정유공장 인수 당시 나랏돈 5,500억원의 손실을 입혔고, 결국 1조 3,0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손실이 났다"며 "손실이 발생한 사실이 인정됐는데, 무리한 기소이고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지검장은 "경영평가 점수를 잘 받으려고 나랏돈을 아무렇게나 쓰고, 사후에는 '경영판단'이었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면 회사 경영을 제멋대로 해도 된다는 말이냐"고 법원 판결을 공개적으로 꼬집었다.

"경영판단을 지나치게 폭넓게 해석하기 시작하면 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주게 되며 그나마 유일하게 존재하는 검찰 수사를 통한 사후통제를 질식시키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지검장이 국회 일정 외에 카메라 앞에서 발표를 하는 것은 검찰 조직 내에서는 거의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서울중앙지검장이 이례적으로 전면에 나선 것은 배임죄가 법원에서 무죄가 나거나 축소되는 경향과도 맞물려 있다.

이석채 전 KT 회장, 강덕수 전 STX 회장의 사건에서 검찰이 기소한 배임 혐의는 대부분 인정받지 못했다. 지난해 이재현 CJ그룹 회장에 대한 상고심에서는 대법원은 배임 혐의가 일부 있지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은 아니다며 사건을 돌려보내기도 했다. 박범훈 전 청와대 수석과 함께 기소된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도 지난해 11월 선고에서 뇌물을 준 혐의는 인정됐지만 중앙대 발전기금 100억원에 대한 배임 혐의는 무죄를 받았다.

◇ 국회 등 배임죄 개정 및 폐지 움직임에 檢 '발끈'…속내는 특수수사에 부담

법원은 배임 동기와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구체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이상 배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종종 취하고 있다.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강영원 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도 2009년 캐나다 자원개발업체 하베스트의 정유부문 자회사 날(NARL)을 인수할 때 "판단상 과오가 있을 뿐 배임의 동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자산가치가 석유공사가 인수한 금액보다 낮다고 볼 증거가 없고, 유가 상승 추세로 협상을 여유 있게 진행하기 어려웠던 사정 등이 있었다며 배임 동기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검찰과 법원의 시각차가 존재하는 것은 배임죄 조항 자체가 일정 범위에서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배임 동기에 대한 입증을 어디까지 해야하는지, 손해를 예측할 수 있었는지 등에 법원과 검찰의 판단이 다를 수 있다.

배임죄 조항인 형법 355조 2항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법 조항만 봤을 때는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가 구체적이지 않고 고의성에 대한 언급은 없다. 때문에 처벌 규정을 보다 구체화하자는 주장이 정재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있어왔다.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이 지난해 8월 배임죄를 수정하는 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 등 법조계 일각에서는 기업인의 책임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될 경우 방만 경영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대기업보다 감시 체계가 느슨한 공기업의 경우 방만 경영이 더 심각할 수 있다는 것.

(사진=자료사진)
대검찰청 고위 관계자는 "사기업은 주주들이 손해를 보는 구조이지만, 공기업은 경영자들이 자신의 임기 내에 실적에 급급해서 무리한 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자원 관련 공사들이다"며 "손해가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는 것이 문제이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공식 입장을 자제하면서도 간간히 배임죄의 폐지, 수정을 반대해왔던 상황에서 검찰이 강영원 전 사장의 무죄건을 계기로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에 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검찰이 '미니 중수부' 격인 검찰총장 직속 부패수사특별수사팀(단장 김기동 검사장)을 꾸려 공기업, 공공기관 등에 대대적인 사정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원이 '찬물을 끼얹는' 판결을 하자 더욱 강경하게 대응한 측면도 있다.

한 기획통 검찰 관계자는 "특별수사팀이 앞으로 공기업 등을 타깃으로 수사를 할 가능성이 있는데, 대표적인 공기업 경영진의 배임 사건으로 강영원 전 사장이 무죄가 난 것은 검찰 입장에서는 큰 충격이다. 이를 타계하기 위해 지검장이 직접 나선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의 강경한 대응으로 배임죄 적용 범위 논란은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과 재계에서 계속해서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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