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는 오늘날 우리의 일상생활을 이처럼 공포 분위기로 몰아넣은 가장 근접한 직접적인 원인을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지속된 경기침체와 노동시장의 유연화에서 찾는다. 수시적인 대량해고, 명예퇴직 압박, 비정규직 고용 증가, 노조조직률 저하, (청년)실업 양산 등 노동시장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은 매우 불안정한 토대 위에서 재구성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2000년대를 경유하면서 경제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로 확산되었다. 이제 일상성은 단기성, 경쟁, 축소, 불안정성, 불확실성, 즉시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 책의 제2부 ‘공포, 일상, 개인의 삶’에서는 오늘날 공포가 개인의 일상적인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주체로 살아가는지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 공포 감정이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될 때, 공포 분위기는 각자 사람들이 당장 취할 행위와 실천을 촉발시키며, 나아가 사람들의 정체성 형성에까지 개입한다. 이러한 논의의 하나로 제3장 ‘공포, 개인화, 그리고 축소된 주체’에서는 현대 한국 사회의 일상적 삶의 특징을 공포를 통해 이해함으로써 일상생활에 대한 감정사회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저자들은 특히 현재 우리 사회를 특징짓는 불확실성과 공포문화가 어떻게 공포의 ‘사사화’ 현상을 초래하고 축소된 주체를 탄생시키는지를 포착한다.
또한 제4장 ‘부자 되기’ 열풍의 감정동학’에서는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른바 ‘부자 되기 열풍’을 감정사회학적 시각에서 분석한다. 저자들은 그것이 단순히 사회구조적 산물이라기보다는 ‘부자 되기’라는 주체적인 행위의 차원과 결합된 집합적 열망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 감정동학을 공포-환멸-선망의 삼중주로 파악한다. 이어 제5장 ‘먹을거리 불안・공포와 먹을거리 파동’에서는 먹을거리 불안과 먹을거리 파동이 발생하고 사라지는 구조적 메커니즘과 감정동학을 탐색한다. 이를 통해 먹을거리 파동을 신뢰와 불신의 변증법적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공포 커뮤니케이션 과정으로 파악하고, 그러한 파동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서 ‘먹을거리 윤리학’을 제시한다.
제3부 ‘공포, 노동, 자본주의’에서는 후기자본주의 체제에서 격렬해지고 있는 경쟁 메커니즘과 공포가 노동자와 극빈자들의 행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그들이 어떠한 행위 특성을 보이는지를 살핀다. 경쟁과 공포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의 삶을 지배하지만, 그럼에도 자본가에게는 경쟁이, 노동자에게는 공포가 훨씬 더 부각된다. 둘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존재하는데, 바로 경쟁과 공포의 전가 메커니즘이다.
제6장 ‘고도경쟁사회 노동자의 공포감정과 행위양식’에서는 오늘날 노동자들의 좌절과 공포를 양산하고 노동자의 존재 기반까지 박탈하고 있는 상황을 ‘고도경쟁 레짐’으로 개념화하면서, 그 속에서 노동자들이 느끼는 감정구조를 포착한다. 또 그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공포가 그 배후감정—분노, 수치심, 무력감, 체념—에 따라 어떻게 각기 다른 행위양식—저항, 자기계발, 예속, 체념—으로 발현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현재 왜 노동자들의 저항이 줄어들거나 약화되는지를 설명한다.
적극적 감정인 분노를 배후감정으로 하는 노동자의 저항행위 영역은 논리적으로 전체 행위 영역의 4분의 1만을 차지하며, 그마저도 고도경쟁사회에서 개인화의 가속화 효과로 인해 현실적으로는 더욱 축소되고 있다. 반면 수동적 감정인 수치심, 무력감, 체념을 배후감정으로 하는 행위 영역은 현실적으로 더욱 넓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자기계발 열풍, 노동계급의 보수화, 노숙자의 증가는 이러한 현상을 실증한다.
제7장 ‘노숙인, 공포, 후기자본주의적 감정통치’에서는 노숙인의 사회적 삶을 후기자본주의적 맥락에서 재구성한다. 또 그들에 대한 장치(dispositif)를 꾸준히 개입시키는데도 왜 노숙인은 사라지기는커녕 정체되거나 더 늘어나는지를 감정사회학적으로 밝힌다. 저자들은 후기자본주의적 감정통치가 지닌 모순과 역설이 그러한 과정을 설명해준다고 주장한다.
제4부 ‘공포, 정치, 사회운동’에서는 공포가 정치와 사회운동에 미치는 영향과 그것이 현실정치와 운동에 어떻게 반영되고 활용되는지를 분석한다. 제8장 ‘공포정치와 복지정치’에서는 보수정권 내에서 복지의 확대와 축소를 가져오는 요인은 무엇인지를 감정사회학적으로 해명한다. 우리 사회의 복지 포퓰리즘 논쟁은 우리나라가 복지국가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동시에 복지가 중요한 정치의 대상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저자들은 이 장에서 역대 집권 보수세력의 권력축소와 권력상실의 공포를 통해 보수정권의 복지정치의 동학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제9장 ‘먹을거리, 공포, 가족동원’에서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다룬다. 이 장에서는 촛불집회의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집회의 여성화’, 그중에서도 특히 ‘가족단위의 동원’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가족동원의 감정 범주로, ‘모성’의 사회적 실천, 정부와 전문지식체계에 대한 ‘신뢰’의 철회, 광우병이라는 미래에 닥쳐올지도 모를 ‘공포’, 기본권 부정에 대한 ‘분노’를 설정하고, 이것들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가족동원을 이끌었는지 분석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의 과정은 감정의 다중적・복합적 측면이 어떻게 갈등을 동원함과 동시에 연대의 토대를 이루면서 한 사회의 모습을 규정짓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격렬하고 열정적이었던 촛불집회 이후 우리 사회에서 그 촛불의 의미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촛불을 더 이상 켜지 않게 한 감정동학은 무엇인가? 이로써 감정이 사회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 변화를 지체시킬 수도 있다는 측면에 대한 후속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저자들은 배후감정에 따른 ‘적극적인 맞춤형 사회정책’을 제시하면서, 이러한 정책의 감정적 전환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 ‘연대의 감정’임을 강조한다. 이것의 배후감정은 애덤 스미스의 ‘동감’, 헤겔의 ‘사랑’, 막스 쉘러의 ‘공감’ 등으로, 모두 타자와의 상호주관성 속에서 ‘인정’, ‘존중’, ‘호혜’를 이끌어내는 감정이다. 저자들은 이것이 격렬하고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한 고도경쟁사회에서 ‘고도연대사회’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감정적 토대임을 강조한다.
한길사/ 432쪽/2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