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작 이 씨는 이미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받아 별도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관련법 조항 때문에 단 한 푼의 위자료도 받지 못하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6부(부장판사 윤강열)는 이 씨와 동료 신경(74)씨, 그의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국가는 이 씨와 신 씨를 제외한 가족들에게 모두 2억 9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고 8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씨 등이 출소한 후에도 사회생활과 취업 등 경제활동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이 씨 등과 가족들은 현재까지도 가혹행위와 감시, 통제로 인한 정신적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다"고 배상 이유를 설명했다.
사북 노동항쟁은 1980년 4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있는 민영탄광업체 '동원탄좌'의 노동자들이 회사 쪽의 임금 착취와 어용 노조에 반발해 일으킨 총파업 사건이다.
이 씨와 신 씨는 당시 항쟁지도부 지도위원과 대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노동투쟁을 이끌었지만, 신군부 계엄사령부는 이 씨 등을 비롯한 탄광 노동자들이 계엄포고령을 위반하고 소요를 일으켰다는 죄목을 씌워 불법으로 연행·구금했다.
이 씨 등은 20일 넘게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상태에서 각목으로 구타를 당하거나 물고문을 받는 등 살인적인 가혹 행위에 시달려야 했다. 군 검찰의 기소 이후 재판에 넘겨진 이 씨는 1심에서 징역 3년, 신 씨는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두 사람에 대한 재평가는 2005년 8월 처음으로 이뤄졌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이들의 명예회복 신청을 받아들여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한 것이었다.
뒤이어 2008년 4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당시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와 허위자백이 있었다며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고, 지난해 2월 재심 법원은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이 씨 등과 가족들은 같은 해 6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재판부는 "국가기관이 오히려 가해자가 되어 국민의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했다는 점에서 위법성이 매우 크다"며 사북항쟁 35년 만에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2억 9천만원을 받게 된 가족들과 달리 정작 사북항쟁의 주역인 이 씨와 신 씨 본인들의 위자료 청구는 각하됐다.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받았다면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를 입었더라도 별도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내용의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운동 보상법)' 18조 2항 때문이었다.
앞서 이 씨는 2008년과 2012년 생활지원금과 장해보상금 등의 명목으로 각각 2600만여 원과 1600만여 원을, 신 씨는 2008년 생활지원금 3200만여 원을 민주화운동위원회로부터 지급 받았다.
재판부는 "신청인이 보상금 지급 결정에 동의하면 민주화운동 보상법에 따라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입은 피해 일체에 대해 민사소송법상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며 "두 사람의 위자료 청구는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해 이 씨는 "배운 일이 탄광 일밖에 없는데 계엄령 위반과 소요죄가 걸려 있어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후에도) 어디 취직도 못 했다"며 "생계를 위해 생활지원금을 신청했을 뿐인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발했다.
이어 "당시 못 사는 사람들은 생활지원금을 받았다고 해서 배상금을 못 받고, 당시 잘 살았던 사람들은 생활지원금을 신청 안 했다고 해서 배상금을 받을 수 있게 한 법은 매우 부당하다"며 "민주화운동 보상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 씨처럼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이 민주화운동위원회로부터 소액의 보상금을 받았다가 재판상 화해로 간주돼 정작 민사소송에서는 손해배상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법적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앞서 2014년 6월에는 법원이 "민주화운동 보상법은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을 역차별한다"며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는 한 남성의 신청을 받아들여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기도 했다. 현재 헌법재판소에서는 이와 관련한 심리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