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얀 마텔의 동명(파이 이야기) 베스트셀러로 먼저 접하기도 했던 이 놀라운 이야기를 가상의 것으로만 여길 수 없도록 만든 사건이 있었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300여 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다.
많은 이들이 세월호 참사를 접하면서 이 소설 또는 영화를 떠올렸을 법하다. 시와 소설을 쓰는 작가 원재훈도 그랬다. 그는 최근 출간한, 28편의 인상적인 문학작품을 소개한 에세이집 '상처받을지라도 패배하지 않기 위하여'(펴낸곳 비채)를 통해 그 먹먹한 기억을 끄집어내고 각인시킨다.
'인도 소년이 태평양 한가운데서 조난을 당해 약 8개월 동안 구명정을 타고 표류해 살아남습니다. 소년의 구명보트에는 굶주린 호랑이 한 마리가 동승하고 있었습니다. 오월동주보다 더 긴박한 상황이지요. 이러한 역경의 파도를 넘어서 소년은 살아남았습니다. 소년은 선박회사에서 나온 사고 조사원들에게 그가 겪은 이야기를 두 가지 버전으로 말합니다. 호랑이와 함께한 한 가지 이야기와 선원들과 함께한,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조사원들에게 어느 이야기가 마음에 드느냐고 물어보는데요.'
소설 파이 이야기를 소개한 이 책 속 한 챕터 '우리 삶에 문학이 필요한 순간'의 일부다. 지은이는 "왜 소년은 이런 질문을 어른들에게 하는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전한다. "이 문제는 과연 '우리에게 문학이 필요한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모두 침몰해가는 화물선에 탑승한 승객들"이라고 쓰고 있다.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를 언급한다.
'우리 인생을 실은 화물선들이 제주도로 가건 진도로 가건 간에 그 선박에는 안전장치가 없습니다. 소설보다 더 끔찍한 일이 근해에서 일어나는 세상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 소설 파이 이야기가 과연 실화일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세월호 참사를 보고 그런 의문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이 이야기가 실화인지 아닌지는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세상이 두려울 뿐입니다.'
'등대 여행을 하면서 주로 당일로 등대가 있는 섬을 찾아다니곤 했는데, 한번은 남해의 무인등대를 찾아 삼일 밤낮을 바다 위에서 지낸 적이 있습니다. (중략) 배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육지에서는 알 수 없습니다. 바다에서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내가 만일 바다에서 홀로 표류한다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지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선장을 비롯한 전문가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삼시 세끼를 잘 먹으면서 며칠을 떠다녔습니다. 그리고 육지에 내리자마자 이렇게 생각했지요. 다시는 이런 짓 안하겠다.'
지은이는 소설 파이 이야기를 두고 '인생의 항해일지'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마치 드넓은 광장과 밀실처럼 두 장소가 한 인간을 품고 서로 어울리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하면서 인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때론 망망대해에 떠 있는 우리의 심리적 상태를 나타내기도 하고,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인생의 항해일지로도 읽히는 소설입니다. 파이가 꼼꼼하게 기록한 이야기들은 인도를 떠난 배가 침몰하자 한 소년이 구명보트를 타고 멕시코 해안까지 도착하는 모험담이고, 무인등대 하나 없는 바다에서 벌어진 일들의 기록입니다. 꼭 태평양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무서운 현실과 마주해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묻는다. "호랑이가 비무장 상태로 있는 나를 향해 다가오는 고통스러운 순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 답을 찾는 길은 "우리 인생을 바다와 항해에 비유하곤 하는 문학에 있다"는 지은이의 생각이다.
그 문학은 시공간을 초월해 값진 경험을 공유하고 기억하려는 인류의 굳은 의지와 다름없어 보인다. 우리에게 '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해야 하는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세월호 참사를 직시하고 기록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제 책상 주위로 호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면서 지나갑니다. 녀석이 나를 노려보면서 등을 활처럼 굽힙니다. 내가 글쓰기를 멈추는 순간 언제든지 달려들 태세입니다. 녀석을 정면에서 똑바로 응시하고 생각합니다. 파이가 본 리처드 파크라는 호랑이는 어디로 갔을까? 작가인 얀 마텔은 알고 있을까? 그가 소설가로 살아가는 동안 이 호랑이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