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호텔과 면세점 업계에서 입지를 다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더불어, 지난해 말 정기 인사에서 패션부문과 백화점 부문 '수장'이 된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과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까지, 올해 '우먼 파워'가 심상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 이부진 사장, '국외' 면세사업 경쟁력 강화·'국내' 신라스테이 확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이미 지난해 '리더'로서 여러번 성과를 거두며 경영자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 7월 '면세점 대전'에서 사업권을 따낸 것은 물론,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 환자가 제주 신라호텔에 머문 사실이 알려지자 지체 없이 현장에 달려가 정보를 공개하고 영업을 중단하는 강단있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특히 성공까지의 과정에서 부드러우면서 강력한 리더십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는 우호적인 평가까지 덤으로 얻었다.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 직전 임직원들에게 "사업 선정이 잘 되면 여러분 덕이고 떨어지면 내 탓"이라고 격려한 것이나, 메르스 환자가 투숙했던 호텔의 투숙객에게 숙박비 전액을 환불해 주고 항공 비용도 보상해줬던 사례만 봐도 이부진 사장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발휘된 것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지난해 경영자로서의 기반을 다진 이 사장은 올해는 나라 안팎으로 사업을 확장해 '실적'으로 점수를 내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먼저 지난해 말 프리 오픈(Pre-open)한 신규면세점의 명품 브랜드 유치 등 그랜드 오픈을 준비하며 신규면세점의 조기 정착을 노력할 계획이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 면세사업의 공략에도 박차를 가한다. 호텔신라 고위 관계자는 "현재 신라면세점은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과 마카오국제공항 등에 진출해있다"며 "올해는 해외 면세사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더 중점을 둘 계획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호텔인 '신라스테이'를 확장하며 호텔업계의 보폭도 늘린다. 현재 전국 7곳에 신라스테이를 오픈했는데 올해 2곳, 내년에 2곳 더 열어 전국 11곳의 출점을 계획하고 있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이부진 사장은 신년사에서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견실경영' 체제를 유지하자"고 말했다"면서 "올해도 이러한 기조 속에서 성장을 추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 이서현 사장, 13년만에 패션부문 '수장'올라…중국 진출은 시험대
언니 못지 않은 동생도 경영 전면에 나선다. 삼성가의 둘째 딸인 이서현 사장도 지난해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삼성물산 패션사업부문을 총괄하게 됐다. 2002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한 이후 13년 만에 '수장'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
이서현 사장은 명문 파슨스에서 패션을 전공한 '정통 패션 전문가'로 통한다. 빈폴을 삼성의 대표 브랜드로 키워냈고, 구호와 에잇세컨즈 등 차세대 브랜드를 잇달아 론칭했다. 뿐만 아니라 초고가 명품 악어백 브랜드 콜롬보 인수와 이탈리아 패션 편집숍 10 꼬르소꼬모 도입을 도맡아 할 정도로 국내외 패션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그러나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실적은 썩 좋지가 않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1997년 중국시장에 제일모직이라는 이름으로 진출한 이래 빈폴, 엠비오, 라피도 등 3개 브랜드로 지난해 1,800억원 선에 그치는 매출을 내는 정도다. 중국에서 연 3조원씩 매출을 올리는 이랜드와 비교했을 때 처지는 실적이다.
이 때문에 이서현 사장이 패션부문 '수장'으로서 올해 가장 주력하고 있는 것도 중국 공략이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은 올해 하반기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인 '에잇세컨즈'의 중국 진출을 앞두고 있다.
이 사장의 애정이 큰 브랜드인만큼 성공적인 중국 공략을 위해 심도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 상해나 북경 등 대도시 지역 가운데 1호점을 물색하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글로벌 SPA 브랜드의 한국 진출이 상당해 많은 타격을 입었다"면서 "역으로 우리도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중국을 필두로 동남아와 미국 등 세계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패션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 사장이 지금까지 패션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해외 브랜드를 들여오고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수장'으로서 실적을 내는 등 경영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정유경 사장, 백화점 대규모 출점 등 주요 현안 짊어져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말 임원 인사를 통해 정용진-정유경 '남매 경영' 체제를 선보였다. 이명희 회장의 딸이자 정용진 부회장의 동생인 정유경 부사장이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으로 올라서면서 '정용진=이마트', '정유경=신세계 백화점'으로 양분해 전담 경영하는 체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것.
정유경 사장이 맡게된 백화점 부문은 이번에 신설된 조직으로, 신세계백화점과 패션업체인 신세계인터내셔널, 아웃렛업체인 신세계사이먼 등을 책임진다. 대외 활동을 극히 자제해 온 정 사장이 이번 승진으로 인해 경영 전반을 진두지휘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지만, 여전히 경영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이란 게 신세계 측 설명이다.
이번에 사장으로 승진한 장재영 대표이사가 현장 경영을 맡고, 정 사장은 백화점의 전략과 미래 먹거리를 찾는 데 집중할 방침이라는 것.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여성 경영인으로 언급되는 이부진·이서현 사장과는 달리 더욱 더 막후에서 중심을 잡고 경영 활동을 지원하는 쪽이 될 것"이라면서 "조용한 행보 속에서 혁신에 발 맞추는 경영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백화점 총괄부문 사장이라는 점에서 '책임 경영'을 피해갈 순 없다.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대규모 출점을 앞두고 있는 상황. 2012년 이후 4년 만에 김해점과 하남점, 대구점을 잇달아 신규 오픈할 계획이다. 성장 정체에 직면한 백화점 사업의 돌파구가 마련될 것인지 신규 백화점 출점의 성과에 따라 정 사장의 경영 능력도 첫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을 통해선 '패션'과 '화장품'을 두 축으로 삼아 사업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이탈리아 화장품 제조사 인터코스와 합작으로 설립한 '신세계인터코스코리아'가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관심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여성 경영인이 극히 드문 우리나라의 경영 환경 속에서 그나마 범삼성가의 딸들이 경영 일선에 등장한 것"이라면서 "착실하게 경영 수업을 받아온 이들이 올해는 실적으로 말해야 할 때"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