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주 수요일 열리는 이 행사는 1992년 1월8일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시작돼 이날로 무려 1212회를 기록하게 됐다. 세월은 흘러흘러 어느덧 세계 최장의 집회가 됐지만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연말에 서둘러 발표된 12.28 합의문이 오히려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일본 정부의 진정성도 확인할 수 없고, 합의 내용을 놓고는 두 나라 사이에 벌써부터 딴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 이로써 한일 관계는 미래지향의 신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연일 선전하고 있다.
소녀상 이전문제도 진정성을 의심케 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일본 언론은 소녀상 이전을 마치 한일 두나라가 합의한 것인양 호도하고 있고, 우리 정부는 소녀상 이전불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일제하 치욕을 당한 피해자는 따로 있는데, 정부가 이들에게 일언반구 설명도 없이 덜컥 합의문에 일본의 법적책임을 배제한 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란 문구를 집어 넣은 것은 외교의 실패일뿐더러 절차상으로도 커다란 하자를 안고 있다. 정대협은 5일 토론회에서 “12.28 합의는 되로 주고 말로 받은 한국외교의 실책”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는 위안부 연내 타결에 쫓긴 결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협상의 기법상 시한에 얽매이는 순간 주도권은 상대방에 넘어가게 마련이다. 대일정책과 관련해 현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위안부와 기타분야 관계정상화를 한꺼번에 묶어서 처리하려는데 있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관계회복의 전제조건으로 삼은 이상 운신의 폭은 좁았고, 결국 얻은 것은 일본 외상이 대독한 아베의 사과라는 껍데기였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합의문구는 일본에게는 선물이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는 대못이나 다름없다.
일본이 소녀상 이전을 부각시키는 것 자체는 일본의 속셈을 짐작케 하기에 충분하다. 독일이 2차대전 종전 60주년인 2005년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 축구장 3배 크기로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세우고, 최근엔 연방의회가 1000만 유로를 소련군 전쟁포로 배상액으로 책정한 것과 달리 일본은 역사를 왜곡하고 평화헌법 개정을 시도하는 등 전혀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정부가 파악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238명이고 이 가운데 46명이 생존해 있다. 생존자의 평균연령은 88.4세다. 24년 전 수요집회가 처음 열릴 당시 이들의 나이는 평균 64세였다고 하니 요즘 백세시대란 노래가 유행이라지만 당시엔 한창의 나이였을 것이다. 그 24년 동안 수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한을 풀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최장기 수요집회는 과연 언제 끝날 것인가? 한일 정부는 불확실한 협상을 보완해 생존자들의 눈물을 닦아줄 역사적 책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