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인간' 성공 보장은 옛말…내일 찾아 떠난다

[취업절벽 후 고용불안, 희망 찾는 청춘들 ②]

올해부터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서 구조조정의 칼날은 느닷없이 청춘들에게도 겨눠지고 있다. 이들조차 절감해야 하는 인건비 대상으로 추락한 것. 가까스레 취업절벽을 통과해 다시 고용불안의 살얼음에 놓인 청춘들의 현실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 주]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입사 후부터 치열한 경쟁에 놓이는 정글회사를 뛰쳐나와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이른바 '회사인간'이 된 후 잦은 야근과 사내정치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피로감, 그리고 '내일'을 찾겠다는 기대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기업의 구조조정이 일상화하는 만큼 대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2030세대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 내가 마모되는 기분…출근이 두려워

"출근할 때마다 죽으러 가는 것 같았어요. 사무실에서는 정신이 멍했고요."

인천에 사는 황모(32)씨는 스펙쌓고 대기업 입사에 모든 에너지를 쏟은 뒤 보냈던 20대 시절을 인생의 암흑기라고 정의했다.

황씨는 "회사 다닐 때 가장 암울하고 공허했다"면서 "적성에 맞지 않아 힘들어해도 남들처럼 버티라는 말이 무엇보다 싫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결국 사표를 던지고 대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 미래 관련 콘텐츠를 제공하는 업체를 차렸다.

아직 초장기라 매출은 미미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고 출근하는 게 즐거워졌다.

황씨는 "남의 선택에 인생을 맡겨야 했던 기업을 나와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면서 돈보다 중요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 있다"면서 "인생스펙을 많이 쌓아 앞으로 잘 될 것 같은 희망에 배가 부르다"고 말했다.

◇ 상사는 사내정치 중…책임은 뒷전

대기업 입사와 동시에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무너져 창업에 나선 경우도 있다.

경기도 광명시의 소문난 빵집인 사장인 박모(33·여)씨가 그 주인공.

박씨는 다니던 패션유통대기업을 퇴사하고 29살에 창업한 뒤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2년 정도 근무해보니 (내 인생을)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사내 정치탓에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상사는 없다는 생각에 적응이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소모적인 직장 내 인관관계에 지친 박씨는 평소 관심이 있던 제빵 기술을 배워 빵집 사장이 됐다. 퇴직금을 모두 잃을 때까지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는 "안정적인 월급의 유혹을 뿌리치고 개인적인 삶의 여유를 얻었다"면서 "매출에 대한 부담이 없지는 않지만 회사에서 받았던 실적 압박 스트레스 보다 견딜만 하다"고 말했다.

◇ 관료주의 만연…아이디어 '묵살' 업무의욕 '저하'

사내정치 못지 않게 관료주의도 회사인간이 된 새내기들의 고민거리다.

국내 사립대 공대를 졸업하고 글로벌 대기업을 다니다 집안청소서비스업체 H사를 창업한 변모(30)씨는 "대기업 다닐 때 신규 사업 아이디어를 내면 '그게 우리 회사에서 할 만한 일입니까?'라며 채택이 안됐다"면서 "상사들은 관성적으로 업무를 처리해 창의적인 업무는 꿈꾸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입사 전 열심히 쌓은 스펙과 개성을 리셋하라는 요구를 받는 것 같아 입사 2년 만에 퇴사를 하고, 인력 파견 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사업에 IT기반 서비스를 접목해 창업했다.

H사는 사업성을 인정받아 설립한 지 5개월도 안돼 외부로부터 1억원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변씨는 "사업 초기지만 정기고객을 300명 확보하고 매출은 한달 3600만원 정도 나오고 있다"면서 "대기업의 울타리에 남기보다 나와서 자신의 길을 찾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20대, 신입보다 사장이 좋다…무모한 도전은 낭패

20대 사장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취업절벽에 시름하는 20대 대학생뿐 아니라 직장을 떠난 20대들이 소규모 자본으로 창업에 나서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20대가 사장인 사업체 수는 8만 3230개로 전년 대비 23.6%가 증가해 30대 증가율(6.5%)을 압도했다.

로아컨설팅 이경현 이사는 "최근들어 대기업 아니면 중견기업에 취업했다가 회의감을 느끼고 먼저 창업에 성공한 선배나 가족, 지인의 도움을 받아 스타트업에 동참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연히 잘 될 것이란 희망을 갖고 사장이 된다는 환상을 좇다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창업을 하고 1년 뒤 살아남은 기업은 55%에 불과하고, 5년 뒤 생존율은 17.7%에 그쳤다. 특히 5년 생존 기업 중에 30대 미만이 대표자인 기업 비중은 16.6%에 그쳐 연령대가 낮을수록 더 빨리 문을 닫는 것으로 나타났다.

'창업이 곧 성공'이란 환상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이에 대해 직업생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과 다른 수평적 조직문화나 업무 유연성 등의 환상을 좇아 창업해서 실패한 사례가 많다"면서 "하고자 하는 가치와 방향을 분명히 하지 않고 회사를 도망치듯 나와 창업하는 건 무모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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