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오는 8일 현행 246개의 선거구대로 '직권상정'을 하겠다던 정 의장의 구상은 여야를 대리한 선거구획정위원회의 합의 불발로 사실상 무산됐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8일 처리 무산으로 1월 임시국회로 처리 절차가 순연되지만, 쟁점법안 처리를 둘러싸고 대립 중인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관계를 고려하면 기약 없는 연기라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는 선거구 획정이 늦어져도 손해볼 것 없고 오히려 이득을 보는 현역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가 투영돼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 '당원명부' 손에 쥔 현역의원들 일부러 획정 지연하나?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 현역의원들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은 4·13 총선까지 남은 정치일정을 분석해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오는 4월 13일에서 100일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현역의원들에게 가장 껄끄러운 문제는 '낙천 가능성'이다.
경선을 통한 정치신인과의 맞대결, 중앙당의 전략공천에 의한 낙마 등이 이들이 상정 가능한 낙천 시나리오다.
그런데 선거구를 획정하지 않고 질질 끄는 전략에는 이 두 가지 복병을 피해갈 수 있는 꼼수가 숨어있다.
인천 지역에 예비후보로 신청한 한 정치신인은 4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경선이 가능한 최소한의 획정 시점은 1월 중순"이라고 지적했다.
3월 말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는 점을 감안하면 여야의 후보 확정은 3월 중순쯤에는 마무리돼야 하고, 후보 확정 기준시점에서 경선에 필요한 시간을 역산하면 2월 말까지는 각 정당의 예비심사가 마무리돼야 하며 경선 실시 여부도 정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획정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여야 각 중앙당의 예비심사, 경선계획 등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전국 지역구의 당원 명부를 손에 쥔 지역구 의원들은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는 틈을 타 독점적인 선거운동 기회를 누리고 있다.
현역의원들이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려 들기 때문에 최종적인 획정이 1월을 넘어 2월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 국회의장 중재, 획정위원회 기능 모두 마비…"결국 여야 정치권의 책임"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도 잘 먹혀들지 않고 있다. 정 의장은 현행 지역구 246석·비례대표 54석을 토대로 획정안 마련을 요청하고, 획정안이 도출되면 임시국회 마지막날인 오는 8일 본회의에 직권상정할 방침이었다.
이에 선거구획정위는 지난 2일 전체회의를 열고 획정안을 논의했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획정위가 독립기구 형식을 띄고 있지만, 여야가 각각 추천한 4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사실상 '여야 대리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게 그 배경이다.
선거구획정위가 형식적으로만 독립돼 있을 뿐 본질은 여야의 이해관계에 종속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구조적으로 여야가 '담판'을 지어야 획정위를 통과할 수 있고, 획정위를 통과해야 정 의장의 직권상정도 가능한 구조인 셈이다.
때문에 여야 각 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거구 획정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새누리당의 경우 친박계와 비박계 간 공천권 다툼이, 더민주의 경우 안철수 의원의 탈당 등 분당 사태가 선거구 획정보다 시급한 당내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선거구획정보다 노동관련 5법, '경제활성화' 법안을 선행적으로 처리해달라"는 청와대 측의 요구까지 개입되면서 선거구 획정 문제는 풀수 없는 난마(亂麻)와 같은 난제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 의장은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 안을 포함해 임시국회 종료일인 8일까지 여야의 합의를 촉구했다.
정 의장은 지난 4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여야 대표와의 오찬 회동에서 "246석 안과 253석 안 둘다 이야기 했다"며 "8일 본회의 통과를 위해 여야 합의를 촉구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