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유희남(87) 할머니의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31일 오후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집' 방 안을 꽉 채웠다.
이날 오후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를 만난 할머니들은 작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이뤄진 위안부 합의를 비판하며 정치권의 도움을 호소했다.
할머니들에게 "대승적 차원의 이해"를 구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서 할머니들은 실망감과 분노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유희남 할머니는 "이번에 저희는 큰 기대를 했다. 나이도 많고 죽을 날이 가까워오니 정부에서 잘 해주시겠지 믿고 있었는데 요즘 너무 실망해서 밥도 먹지 못한다"고 전했다.
침통한 표정으로 유 할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인 문재인 대표는 "힘 좀 많이 써 달라"는 호소에 작은 목소리로 "그러겠습니다"라고 답하고는,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할머니 부끄러워하시 마세요. 나라가 부끄러워야지"라고 말했다.
문 대표의 답변에 유 할머니는 "이제는 부끄럽지 않고 분하다"며 "부끄러운 건 대한민국 정부고 남자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일출(87) 할머니도 울먹이며 "이 문제를 국회에 들어간 똑똑한 사람들이 해결해 달라. 나는 경북 상주가 고향인데 (일제 강점을) 못 마고 중국으로 끌려갔다. 국회에서 오신 분들은 우리보다 많이 낫지 않냐"고 눈물로 도움을 호소했다.
강 할머니는 "말 못하는 아픔이 내 속으로 흘러들어간다"고 울먹이며 "국회에서 온 것에 감사하고 이 나라를 똑바로 지키려는 것에 감사하다"고도 했다.
이옥선(88) 할머니는 "(우리 정부는) 일본이 사죄했다고 하는데 이게 무슨 사죄냐"고 반문하며 "결국 (정부가) 우리를 속였다. 우리 할머니들은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는 것이냐"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자살을 7번이나 시도했다는 김군자(89) 할머니도 "우리를 빼놓고 (위안부 문제 합의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나. 피해자는 우리"라며 "우리 할머니들 얼마 안 남았다. 어서 명예회복하게 해주시고 일본 정부의 공적인 사과를 받게 해 달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의 호소에 현장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박옥선(91) 할머니도 "우리들이 아무리 억세게 말 한다고 해도 저들이(일본 정부가) 저런 (딴)소리를 하는데 나는 겁나고 (분해서) 밤에 잠이 안 온다"고 전하기도 했다.
침통한 표정으로 할머니들의 말을 담담하게 들은 문 대표는 "제 어머니가 89세, 할머니들과 비슷한 연배"라며 "위안부 할머니들이 마흔아홉 분만 남은 지금 이 순간까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정말 죄송스럽다"고 사과했다.
문 대표는 "위안부 문제 해결의 핵심은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게 하는 것"이라며 "이번 합의는 일본이 법적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도의적 책임을 '립서비스'하고 총리가 대독 사과를 하도록 합의한 것인데 어떻게 이번 합의를 용납할 수 있겠냐"며 이번 합의가 원점 재검토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어 "돈(10억 엔)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적인 배상금으로 내놓는 돈이라면 우리가 받을 수 있다"며 "그러나 공식적인 배상금 아니라 위로금조로 내놓고 그것마저도 소녀상을 철거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놓는다는 것 아닌가. 그것을 어떻게 받을 수 있겠나"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우리는 오늘 합의가 다 무효고 그 돈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라며 "할머니들을 위한 재단설립자금 100억원 모금운동을 제안했다. 아마 많은 국민 여러분들이 함께 해주실 것"이라고 전했다.
문 대표는 "국내외에 뜻을 함께 하는 많은 양심적인 세력이 있는데 그분들과 함께 우리당이 끝까지 일본의 법적책임을 묻고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까지 받아내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