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로수길'을 연상케 하는 신톈디(新天地) 번화가 한복판, 그 골목길 안쪽인 마당로 보경리 4호에 자리잡은 임시정부청사는 바깥에서 보기엔 고풍이 물씬했다.
1919년 대한민국 수립을 선포했던 임시정부의 첫번째 청사는 아니지만, 1926년부터 1932년까지 6년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항일의 순간들을 간직한 곳이다.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공원 의거 이후 일제의 추적이 한층 강화되면서, 독립투사들은 1945년까지 항저우→전장→창사→광저우→류저우→치장→충징으로 청사를 이전해가며 '대장정'에 버금가는 고행을 겪어야 했다.
상해임정 유적지는 3층짜리 가구 12개가 일렬로 붙어있는 빨간벽돌 건물 가운데 실제 청사로 사용된 4호는 물론, 3호와 5호까지 확장해 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맨 안쪽 벽면에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이곳을 찾은 역대 대통령들의 사진이 걸렸고, 그보다 넓은 면적은 이곳을 방문한 정치인과 정부 관계자 등 유력 인사들이 차지했다.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 서병수 부산시장과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 집권여당 유력 인사들의 얼굴이 사실상 도배된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송호창 의원 같은 야권 인사들의 사진도 눈에 띈다.
심지어는 방산비리로 기소된 최윤희 전 합참의장이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약식기소된 현경대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사진도 버젓이 걸렸다.
부산에서 상하이를 찾은 40대 사업가 이모씨도 "정치인이나 정부 관계자 사진보다는, 독립운동가들의 본 모습이나 지나온 사진을 걸어놓는 게 훨씬 낫지 않겠느냐"고 아쉬워했다.
상하이시는 지난 9월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우리 정부측과 협의 끝에 7억원을 들여 전시관 전체를 리모델링한 뒤 재개관했다.
이 과정에서 내부 환경이 현대적으로 바뀌고 동선과 내용물도 달라지면서 "선열들의 영혼이 빠져나간 느낌까지 든다"는 게 학계의 얘기다.
취재진과 함께 현장을 찾은 국내 한 역사학자는 "십여년전 왔을 때랑 비교해보면 가구나 찻잔, 바닥까지 다 바뀐 것 같다"며 "설령 당시 상황이 남아있지 않다 해도 최대한 과거에 가까운 형태로 복원하는 게 역사적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학자는 "주변을 정비하는 건 좋지만 내부까지 다 정비를 해버리는 건 문제"라며 "이분들이 해외에서 불편하지 않게 생활했구나 하는 오해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의 전시관 상황은 아예 새롭게 밀어버리면서 '유적지'보단 '관광지' 느낌이 강하다는 것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해외 현충시설은 우리가 직접 관리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리모델링이든, 안내판을 바꾸든 중국 정부의 협조가 있어야만 가능한 사안"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보훈처측은 그러나 정치인 사진 전시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추진했는지에 대해선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오는 2019년이면 출범 100주년을 맞게 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하지만 그 정통성을 부인하려는 역사 국정교과서 강행에 시름시름 자취를 잃게 만드는 후손들의 관리 부재까지 겹치면서, 여전히 고난의 길은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