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경기 광주 나눔의 집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성토의 장이 됐다. 대상은 일본정부가 아니었다. 한국정부였다.
이날 오후 외교부 조태열 2차관은 전날 이뤄진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일본 정부와의 합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나눔의 집을 찾았다.
간담회 자리에는 정복수(100), 김군자(90), 강옥순(92), 이옥선(89), 유희남(88), 강일출(88) 할머니 등 6명이 참석했다.
유 할머니는 "매년 서너 번씩 일본에서 사람들을 보내 여기다 집지어주고 생활비 주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명예 회복과 법적 배상이지, 돈 몇 푼 원하는 게 아니다"라며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했다.
이어 "그런데 우리 정부가 그들하고 똑같이 얘기하는데 여기서 죽으면 죽었지 그렇게는 못한다"며 "일본의 요구를 한국이 들어주니까 얕보는 거고, 그렇게 흐지부지 합의할 거면, 죽게 놔두지, 왜 밥 먹여주고 살게 하냐"며 한국정부에 대한 쓴소리를 쏟아냈다.
다른 피해 할머니들도 사전 협의 없이 일본정부와 협상을 끝내버린 한국 정부에 대해 원망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군자 할머니는 "피해자는 우린데, 정부가 어떻게 함부로 합의를 아냐. 우린 인정 못한다"며 "우린 지금도 의료 복지 혜택 잘 받고 있다. 일본의 공적 사과, 공적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병신이 돼서 귀가 곪아 터져서 말도 못 들어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데, 우리는 아무도 없이 어떻게 합의를 했냐"며 "명예 회복 해서 이 세월동안 가슴에 맺힌 한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게 해달라"며 복받쳐오르는 감정에 말끝을 흐렸다.
조 차관을 향해 "우리가 어느 나라의 딸이냐, 우리는 다른 나라의 딸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마이크를 넘겨 받은 이옥선 할머니는 "우리 정부는 뭐하는 정부냐. 우리 정부가 할머니들을 다 팔아먹었다. 다시 협상하라"며 정부를 비난했다.
조 2차관은 1시간여 동안 이어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질책을 경청한 뒤 "정부가 바로 할머니들을 대표해서 할머니들의 아픔이 온 국민의 아픔이고 할머니들의 명예가 우리 국민의 명예라고 생각을 하고 합의에 임했다"며 "100% 만족스럽지 않겠지만, 전체 내용을 들여다 보고 의미를 다시 한 번 평가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임 차관의 방문 당시 쉼터에는 김복동(89)·이용수(88)·길원옥(87) 할머니와 쉼터 관계자, 그리고 차관의 방문 소식을 듣고 찾아온 수십 명의 취재진이 있었다.
임 차관이 쉼터에 들어서자 마자 이용수 할머니는 "일본 외교부냐"며 "우리는 왜 두번 죽이려 하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이에 임 차관은 "할머니들 보시기에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운을 뗀 뒤, "저희 어머니도 할머니들과 나이가 똑같아 어머니와 같은 위치에 계시다고 생각하고 교섭에 임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하지만 연휴 기간이라는 시간적 제약이 있었고, 논의가 급하게 진전됐기 때문에 미리 말씀을 못 드렸다"며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연휴가 어디있냐, 이런 문제에 대해서 노는 날 찾고 일하는 날 찾게 돼 있냐"라며 "우리가 20여 년 동안 공식 사죄, 법적 배상 하라고 외치고 있지 않느냐"고 고함을 쳤다.
김복동 할머니는 "협상하기 전에 당사자인 우리 얘기를 들었어야 했다"며 "우리에게는 말 한마디도 없이 정부끼리 뚝딱 해서 타결됐다고 하면 되는 거냐"고 반문했다.
15분쯤 이어온 대화는 차관의 해명 이후 할머니들이 거세게 반발하려 할 때 비공개로 전환됐고, 40여 분 뒤 차관은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빠져나갔다.
이후 다시 쉼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할머니들은 실망을 금치 못하며 울먹였다.
김 할머니는 "기자들 나간 뒤에, (차관이) 아직은 시작 단계고, 앞으로 절차가 많이 남아 있는 것처럼 말했다"며 "뭐가 시작이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결코 합의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길원옥 할머니는 끝까지 고개를 떨구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용수 할머니가 어깨를 주물러 주면 간혹 "힘들다"고 답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