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터널, 끝이 안보이네"…산유국들 너도나도 초긴축

보조금 삭감·세금 신설…"세금없는 호시절 끝"

저유가 추세가 내년에도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재정위기로 내몰린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이 앞다퉈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서고 있다.

산유국들은 각종 보조금을 대폭 삭감하고 휘발유 등 가격을 올려 궁핍해진 재정을 확충하는 한편 세금 신설·인상 등을 통해 세수를 늘려 재정파탄을 피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에 따라 중동 산유국의 상징과도 같은 '세금이 없고 기름이 물만큼 싼' 좋은 시절이 종말을 맞이하게 됐다.


◇ 추락하는 국제유가…"내년 상반기에 배럴당 20달러대"

국제 유가는 지난 1년간 내리막길을 걸었다.

28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내년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36.81달러에 마감했다. 1년 전 같은 날의 마감 가격은 54.73달러였다.

이날 런던 ICE 선물시장에서 배럴당 36.62달러선에서 움직인 내년 2월 인도분 브렌트유도 1년 전에는 배럴당 59.37달러선에서 거래됐다.

국제 유가 하락 기조는 내년 상반기에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됐다.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중국의 수요 둔화 지속 등으로 유가가 배럴당 20달러대까지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내년에 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당장 석유수출국기구(OPEC)이 산유량을 줄이지 않는 상황에서 내년 초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해제되면 이란의 국제 석유시장 가세로 생산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 산유국 초긴축 재정정책 '도미노'

세계 최대 석유수출국인 사우디는 29일부터 연료 보조금을 대폭 줄이고 보통 휘발유 가격을 리터당 12센트에서 20센트로 67% 전격 인상했다. 고급 무연휘발유는 16센트에서 24센트로 50% 올렸다.

사우디는 휘발유 가격뿐 아니라 경유와 등유 가격도 인상하고 보조금이 지원됐던 전기·수도 요금까지 올리기로 했다.

앞서 OPEC 회원국인 아랍에미리트(UAE)는 중동 산유국 중 처음으로 지난 8월 연간 35억 달러(약 4조900억원)에 달하는 휘발유 보조금을 폐지했다.

올해 들어 UAE를 포함해 이집트와 앙골라, 가봉, 인도네시아도 에너지 보조금을 줄줄이 삭감했다.

사우디는 정부의 연료 보조금 덕분에 휘발유 가격이 베네수엘라, 리비아에 이어 세계 최저 수준이었으나, 이제 사우디의 비상 긴축 정책은 다른 중동 산유국들에 빠른 속도로 확산할 전망이다.

국제유가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산유국들은 만지작거리던 세금 카드를 꺼내 들었다.

사우디 등 걸프 지역 6개 산유국의 모임인 걸프협력회의(GCC)는 이르면 내년부터 부가가치세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이달 초에 공식화했다.

저유가 장기화에 걸프 지역 산유국들이 고수해온 부가세, 법인세, 소득세 등이 없는 무세금 정책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국제유가 하락과 원유 생산감소로 세수에 구멍이 난 미국 알래스카 주(州)도 35년 만에 처음으로 주민으로부터 소득세를 걷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알래스카는 주민이 미국에서 가장 적은 세금을 내는 지역이다.

산유국들의 이 같은 '몸부림'은 저유가 추세가 이어지면 향후 3∼20년 사이에 산유국들의 유동자산이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중동·중앙아시아 경제전망'에 따르면 GCC에 속하지 않는 중동지역 산유국들의 경우 3년, 바레인, 오만, 사우디는 5년 안에 유동자산이 바닥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코카서스·중앙아시아(CCA) 지역 산유국은 15년,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는 20년을 버틸 수 있다고 IMF는 전망했다.


◇ '저유가의 저주'…산유국 신용등급 추락

국제유가가 떨어지면서 산유국들의 국가신용등급도 함께 추락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8월 브라질의 신용등급을 투자등급의 맨 아래 단계인 'Baa3'로 한 단계 강등한 데 이어 최근 브라질 국가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강등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는 무디스로부터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이 있다는 'Caa3' 등급을, S&P와 피치로부터는 부도 위험이 큰 'CCC'로 평가받았다.

원유 수출로 국가재정의 90%를 충당하는 베네수엘라는 유가 하락으로 올해 재정 수입이 작년보다 68%나 감소하는 등 국가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재정난 속에 물가가 치솟고 서민들이 생필품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이달 치러진 총선에서 베네수엘라 집권 통합사회주의당은 16년 만에 야권연대에 정권을 넘겨줬다.

OPEC 중소국가인 앙골라는 투자등급을 상실한 'Ba2'로 조사됐고, 오만은 S&P의 평가에서 국가신용등급이 BBB+으로 강등됐다.

러시아도 피치 투자등급의 맨 아래인 'BBB-'를 받았으며, 무디스는 러시아를 투자부적격 등급인 'Ba1'으로 분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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