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 '캣맘'의 죽음…방치된 옥상과 촉법소년, 논란은 그때뿐 ② 쟤 메르스래!"…MERS, 끝나지 않은 고통 ③ '유서' 쓴 최몽룡 교수 "교과서 집필진 공개해야" ④ 세간 시선엔 여전히 '피의자'···공릉동 살인사건 남편의 눈물 ⑤ 예비군 총기 사고 7개월…총기고정틀 달랑 하나 개선 (계속) |
보통 사건·사고 기사에서 피해자의 이름은 익명 처리하기 마련이지만, 윤재홍(25) 씨의 어머니 어성애(51)씨는 오히려 숨진 아들의 이름을 밝혀달라 호소했다.
윤씨는 지난 5월 서울 서초강남예비군 훈련장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고 당시 예비군 최모(23)씨의 총에 맞아 목을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 "예비군 총기 사고에 아들 잃은 우리 가족, 이제 삶의 행복은 없어요"
모든 자식들이 그렇듯 윤씨는 집안의 기둥이었다.
심근경색 협심증을 앓는 아버지를 대신해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돕겠다며 대학에서 전공한 자동차 관련 진로를 포기하고 일자리부터 구한 효자였다.
"예전에 세월호 참사 보면서 얼마나 가슴 아플까 생각했거든요. 이제 그 심정을 알겠어요. 예전에는 식구끼리 사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삶의 행복이 하나도 없어요. 그냥 사는 거예요."
어씨는 숨진 윤씨의 얘기는 가족끼리도 하지 않고 잊은 듯 지낸다고 말했다.
새벽마다 각자 이불 속에 웅크린 채 숨진 윤씨의 휴대전화 사진이나 문자를 보며 윤씨를 찾으면서도 서로 내색하지 못한 채 지낸다는 얘기다.
또다른 사망자 박모(25)씨는 최씨의 뒤에서 대기하다 머리에 총을 맞고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숨졌다.
최씨와 윤씨 사이 2사로에 있던 안모(26)씨는 왼쪽 등에 총을 맞아 폐를 다쳐 3급 장애 판정을 받았고, 5사로에서 뺨에 총을 맞은 황모(23)씨는 4차례에 걸쳐 대형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들은 아직도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 대책 없는 軍… 7개월간 개선한 건 총기고정틀 보완 사업뿐
사고 이틀째에 군은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하고, 예비군 안전확보 TF를 꾸렸다.
하지만 7개월이 지난 현재, 군이 내놓았던 대책 가운데 총기고정틀/안전고리 보완 사업만 실현됐을 뿐, 나머지 사업은 모두 '추후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의 한 보좌관은 "군이 내놓은 대책 규모는 53억여원 수준으로 예산이 부족했던 게 아니다"라며 "군의 11개 대책 중 어느 것 하나 뾰족한 해법이 없으니 지지부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눈길을 끌었던 대책 중 하나는 예비군 가운데 현역 복무 부적합자나 의병 전역자들을 가려 관련 정보를 예비군 부대에 공유하는 방안이었다.
사고 직후 군은 사고를 일으킨 최씨가 군 복무시절부터 관심병사로 관리됐고, 군 입대를 전후로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병사 개인에 대한 낙인찍기로 변질될 수 있는 데다, 군이 사고 책임을 개인의 일탈 행위로 미룬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해당 방안이 폐기됐다.
심지어 군이 안전 대책을 핑계로 '예산 부풀리기·방산업체 배불리기'에 급급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버튼을 누르면 표적지가 자동으로 이동하는 레일형 자동 표적확인시스템이 대표적인 사례다.
군은 사격 훈련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사로 안에 예비군이 들어가지 않게 된다며 사업 도입을 추진했지만, 예산에 비해 실효가 적다는 비난을 받고 자취를 감췄다.
◇ 지휘관들 의욕도 없고 예산 배정도 번번이 후순위
이 사업에 쓰인 예산은 불과 4억 8000여만원으로, 적은 예산을 아끼느라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뒤늦은 반성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처럼 총기 사고 예방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조치마저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배경에는 예비군 부대가 가진 구조적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예비군 부대는 군내 비주류로 꼽히는 부대다.
'승진 루트'에서 멀어진 지휘관들의 개선 의욕도 떨어지고, 예산 배정에서도 번번이 후순위로 밀려나다보니 열악한 안전 시설은 제자리 걸음일 수밖에 없다.
일반인이 현역 군인보다 많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예비군 부대의 특징도 사고의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 5월 새정치민주연합 백군기 의원실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현역 군인은 예비군 통제에 골머리를 앓는다"며 "간부 자원도 비상근 예비군들로 일반 예비군에 대한 징계·제재 권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 책임지는 사람 없는 예비군…"제도 효율성 높여야"
책임지는 사람 없는 예비군 부대에 자리잡은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은 사고 피해를 더 키웠다.
관련 지침에 따르면 사격장에는 구급차 또는 응급 수송용 차량을 대기시켜야 하지만, 사고 당시 구급차가 부족해 윤씨는 40분 가까이 사격장 바닥에 방치된 채 심폐소생술만 받았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예비군 제도에 대한 근본적 변화가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실제 참여정부 시절엔 '국방개혁 2020'을 통해 예비군 규모를 300만명에서 150만명으로 대폭 줄이는 대신 현역 군인에 준하도록 훈련하는 '정예화 예비군 제도'를 도입하려 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논의는 흐지부지되었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현대전의 양상을 보면 예비군 제도를 완전히 폐지해도 무방하다"며 "만약 존치하더라도 북유럽 형태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키는 협동조합 형태로 개선하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임 소장은 "총기 등은 직업군인 간부들이 직접 관리하고, 주민들은 자발적 형태로 지역 방위 계획을 검토하기 때문에 예비군 제도 효율성도 높아지고 안전사고도 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