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 '캣맘'의 죽음…방치된 옥상과 촉법소년, 논란은 그때뿐 ② 쟤 메르스래!"…MERS, 끝나지 않은 고통 ③ '유서' 쓴 최몽룡 교수 "교과서 집필진 공개해야" (계속) |
최근 일본에 다녀왔다는 최 교수는 후줄근한 회색 상의에 무릎 나온 바지를 입고 자택에서 일본에 있는 조선식 산성(山城) 연구에 여념이 없었다.
거실 곳곳에 쌓인 책들과 취미로 수집한 카메라 위의 뽀얀 먼지는 지난달 초 취재진이 최 교수의 집을 찾았을 때와 똑같았다.
당시 그는 청와대로부터 회견 참여를 종용받았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고, 이후 여기자 성추문 논란까지 일자 국정 역사 교과서 대표집필진에서 자진 사퇴했다. (관련 기사: CBS노컷뉴스 11월 5일자 - (최몽룡 교수 '청와대 수석, 국정화 회견에 참여 종용')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연구자료가 흩어져 있는 책상 위에 놓인 두 장의 유서. 지난달 12일에 썼다는 유서는 재산 상속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유서까지 생각할 정도로 심경이 착잡했다"는 최 교수는 "나이가 들어 부주의로 인한 실수를 했다"고 씁쓸해했다.
이어 "여러가지 주변 정리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서도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최 교수가 말하는 '청와대 종용', '성추문 논란'
국정 교과서 관련 기자회견 참여를 요청한 현정택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최 교수와의 인연은 1979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 교수는 당시 한국인 최초로 하버드대에서 인류학과 고고학 전공 철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고, 현 수석은 공무원 자격으로 하버드대에 연수를 왔다. 동양인이 거의 없던 때에 두 사람은 쉽게 인연을 맺을 수 있었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술자리를 함께 했다.
최 교수는 "요리하는 걸 좋아해 현 수석을 초대해 술잔을 나누곤 했다"고 전했다.
현정택 수석이 연수를 마치면서 두 사람 사이 연락은 끊겼다. 그러다 지난달 4일 최 교수가 제자들의 만류로 국정 교과서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현 수석이 전화를 걸어왔다.
최 교수는, "기자들이 불만이 많아 몰려갈지 모른다", "술을 마셨어도 나와 줬으면 좋겠다"는 현 수석의 발언을 공개했고 이는 큰 파장을 낳았다.
최몽룡 교수는 "반가웠는데, 나 때문에 현 수석이 곤란해진 것 같다"며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성추문과 관련해서는 언급을 꺼리며 "공인으로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내 실수였다"고만 답했다.
◇ 경찰까지 출동해 "교수님, 지금 위험합니다"…누구 지시?
최 교수는 "신변보호를 요청한 적도 없는데 경찰이 출동해 집 인근에 배치돼 있었다"며 "기자들이 떠난 뒤 내게 찾아와 '교수님 지금 위험하시다'고 경고하기에 '괜찮다'며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영등포경찰서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최 교수의 변고(變故)를 확인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출동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국사편찬위원회(국편)는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며 "회견 당일 관할경찰서에 행사진행 협조 요청만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 "집필진 공개해야…제대로 쓰지 않으면 후세가 비판"
서울 대경상업고 소속 김형도 교사가 스스로 집필진에 선정됐다고 밝혔지만, 자격시비 논란이 불거지면서 곧 자진 사퇴하기도 했다.
교육부는 또 지난달까지 편찬기준을 확정·발표하기로 한 계획도 유예하면서 실질적인 집필기간은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
이에 대해 최 교수는 "집필진 공개를 그렇게까지 꺼릴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좀 더 많은 집필진들이 공개돼 역할 분담을 하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냈다.
자신과 신 교수만 집필진으로 공개돼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던 것과 달리, 여러 집필진을 공개해 관심을 분산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어 "장관들은 내정되면 공개를 한 뒤 비위가 밝혀지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물러난다"며 "그런 부분들을 선용(善用)하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념과 관계없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귀납적으로 써야 해요. 역사학자가 제일 두려워하는 게 역사인데, 제대로 된 교과서가 나오지 않으면 후세에 비판을 받을 겁니다."
국정 교과서 파문에 휩쓸려 유서까지 써야 했던, 노(老) 교수의 마지막 당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