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쓴 최몽룡 교수 "교과서 집필진 공개해야"

[사건기자들이 돌아본 2015, 그 사건 그 후 ③]

메르스 사태에서 국정 교과서 파문까지 각종 사건과 논란으로 얼룩진 2015년이 저물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사건기자들이 돌아본 2015, 그 사건 그 후' 5부작 연속기획을 통해 올 한해 주요 이슈들의 오늘을 짚어본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캣맘'의 죽음…방치된 옥상과 촉법소년, 논란은 그때뿐
② 쟤 메르스래!"…MERS, 끝나지 않은 고통

③ '유서' 쓴 최몽룡 교수 "교과서 집필진 공개해야"
(계속)


지난 21일 자택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서울대 최몽룡 명예교수 (사진= 김구연 기자)
지난 21일, 한달 보름만에 언론 인터뷰에 응한 서울대 최몽룡(69) 명예교수.

최근 일본에 다녀왔다는 최 교수는 후줄근한 회색 상의에 무릎 나온 바지를 입고 자택에서 일본에 있는 조선식 산성(山城) 연구에 여념이 없었다.

거실 곳곳에 쌓인 책들과 취미로 수집한 카메라 위의 뽀얀 먼지는 지난달 초 취재진이 최 교수의 집을 찾았을 때와 똑같았다.

당시 그는 청와대로부터 회견 참여를 종용받았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고, 이후 여기자 성추문 논란까지 일자 국정 역사 교과서 대표집필진에서 자진 사퇴했다. (관련 기사: CBS노컷뉴스 11월 5일자 - (최몽룡 교수 '청와대 수석, 국정화 회견에 참여 종용')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연구자료가 흩어져 있는 책상 위에 놓인 두 장의 유서. 지난달 12일에 썼다는 유서는 재산 상속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유서까지 생각할 정도로 심경이 착잡했다"는 최 교수는 "나이가 들어 부주의로 인한 실수를 했다"고 씁쓸해했다.

이어 "여러가지 주변 정리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서도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최 교수가 말하는 '청와대 종용', '성추문 논란'

국정 교과서 관련 기자회견 참여를 요청한 현정택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최 교수와의 인연은 1979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 교수는 당시 한국인 최초로 하버드대에서 인류학과 고고학 전공 철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고, 현 수석은 공무원 자격으로 하버드대에 연수를 왔다. 동양인이 거의 없던 때에 두 사람은 쉽게 인연을 맺을 수 있었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술자리를 함께 했다.

최 교수는 "요리하는 걸 좋아해 현 수석을 초대해 술잔을 나누곤 했다"고 전했다.

현정택 수석이 연수를 마치면서 두 사람 사이 연락은 끊겼다. 그러다 지난달 4일 최 교수가 제자들의 만류로 국정 교과서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현 수석이 전화를 걸어왔다.

최 교수는, "기자들이 불만이 많아 몰려갈지 모른다", "술을 마셨어도 나와 줬으면 좋겠다"는 현 수석의 발언을 공개했고 이는 큰 파장을 낳았다.

최몽룡 교수는 "반가웠는데, 나 때문에 현 수석이 곤란해진 것 같다"며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성추문과 관련해서는 언급을 꺼리며 "공인으로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내 실수였다"고만 답했다.

◇ 경찰까지 출동해 "교수님, 지금 위험합니다"…누구 지시?

지난달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에서 교과서 편찬을 맡은 국사편찬위원회 김정배 위원장이 교과서 개발 방향과 집필진 구성, 편찬 기준 및 개발 일정을 발표하고 있다. (자료사진/윤성호 기자)
최 교수의 냉장고에는 서울 영등포경찰서 관계자 명함 3개가 꽂혀 있다. 그가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못하자 경찰까지 출동했던 것.

최 교수는 "신변보호를 요청한 적도 없는데 경찰이 출동해 집 인근에 배치돼 있었다"며 "기자들이 떠난 뒤 내게 찾아와 '교수님 지금 위험하시다'고 경고하기에 '괜찮다'며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영등포경찰서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최 교수의 변고(變故)를 확인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출동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국사편찬위원회(국편)는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며 "회견 당일 관할경찰서에 행사진행 협조 요청만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 "집필진 공개해야…제대로 쓰지 않으면 후세가 비판"

지난 21일 자택에서 연구에 몰두 중인 서울대 최몽룡 명예교수 (사진=김구연 기자)
국정 교과서를 둘러싼 파문이 가라앉지 않으면서 정부와 국편은 결국 이화여대 신형식 명예교수를 제외한 집필진 전원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서울 대경상업고 소속 김형도 교사가 스스로 집필진에 선정됐다고 밝혔지만, 자격시비 논란이 불거지면서 곧 자진 사퇴하기도 했다.

교육부는 또 지난달까지 편찬기준을 확정·발표하기로 한 계획도 유예하면서 실질적인 집필기간은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

이에 대해 최 교수는 "집필진 공개를 그렇게까지 꺼릴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좀 더 많은 집필진들이 공개돼 역할 분담을 하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냈다.

자신과 신 교수만 집필진으로 공개돼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던 것과 달리, 여러 집필진을 공개해 관심을 분산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어 "장관들은 내정되면 공개를 한 뒤 비위가 밝혀지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물러난다"며 "그런 부분들을 선용(善用)하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념과 관계없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귀납적으로 써야 해요. 역사학자가 제일 두려워하는 게 역사인데, 제대로 된 교과서가 나오지 않으면 후세에 비판을 받을 겁니다."

국정 교과서 파문에 휩쓸려 유서까지 써야 했던, 노(老) 교수의 마지막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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