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이 지난 5일 체코 방문에서 돌아온 뒤 바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던 개각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개각은 현재 시계 제로이다.
박 대통령은 물론 내년 총선에 나갈 5명의 장관 등 개각 대상과 후보군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받아 후임자를 거의 정리한 단계로 알려졌다. 사실상 박 대통령의 최종 결심과 발표 시기만 남겨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경제 활성화 2법과 노동관계 5법 등 민생법안 처리에 몰두하면서 개각은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관심 법안에 대한 걱정으로 요즘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는 박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 18일 전국 상공회의소 회장단 오찬에서 한 발언은 법안 통과에 ‘올인’(다걸기)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박 대통령은 “구조개혁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핵심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아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이라며 “법안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서 내년의 각종 악재들을 이겨내기 위한 대비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우리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 제대로 될 수 있을지, 요즘은 걱정으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저도 편안하고 쉽게 대통령의 길을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를 믿고 신뢰를 보내주신 국민들을 위해서는 이러한 것을 방치하고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연일 애끓는 호소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까지 역설했다.
그러나 문제는 박 대통령의 심경이 아무리 “타들어가는 심정”이라고 해도 이번 주에 개각 발표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즉 개각 지연에 따른 장관 공석 등 국정 공백이 우려되는 것이다.
개각의 1차 대상자는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할 최경환 기재부 장관 등 5명의 장관인데, 이들은 총선 90일 전인 내년 1월 14일까지 공직에서 물러나야 하고, 또 후임 장관에 대한 국회 청문 절차에 20일이 필요한 만큼, 늦어도 23일에는 개각 발표가 있어야 장관 공석 사태를 면할 수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몰두하고 있는 민생법안의 처리 여부가 가시화되지 않는 한 이번 주 개각도 사실 장담하기는 어렵다. 연말 연초로 넘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김무성,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각당의 원유철, 이종걸 원내대표는 20일 국회에서 회동을 갖고, 쟁점법안 처리와 선거구 획정 문제를 논의했지만, 노동 관련 5법 중 기간제법과 파견법에서 인식 차를 좁히지 못해 합의 도출에 실패한 바 있다.
사실 법안 통과와 연계된 개각 발표의 지연은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이 야당을 압박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용인대 최창렬 교수는 “박 대통령이 법안 처리의 지연에 대해 야당을 비판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개각 지연이 국정 마비로 연결되고, 국정 마비가 결국 야당 때문이라는 프레임이 조성되고 있다”며 “이런 부분은 야당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강대 이현우 교수는 “박 대통령이 임기 4년차에 걸 맞는 성과도출에 강하게 몰입하고, 이를 위한 법안 처리 문제에 쏠리면서 국정 운영이 균형을 잃은 측면이 있다”며 “개각 지연도 그 한 예”라고 설명했다.
개각이 늦춰지자 해당 부처에서는 일손을 잡기가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개각 지연이 부처 인사와 신년 업무 계획 등에 연쇄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입법을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 속에 개각 지연이 맞물리면서 연말 정국은 어수선하기만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