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센티미 터의 누비 바늘로 0.3밀리미터의 바늘땀을 손가락이 뒤틀리고 몸이 삭도록 끊임없이 놓는 수덕과 그녀의 딸들이 ‘우물집’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 자 한 자 새겨 2천 2백 매의 장편소설로 완성했다.
“누비 는 똑같은 바늘땀들의 반복을 통해 아름다움에 도달하지. 자기 수양 과 인내, 극기에 가까운 절제를 통해 최상의 아름다움에 도달하는 게 우리 전통 누비야.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 유한 침선법이지”라고 되뇌는 소설 속 인물의 말처럼, 가도 가도 끝 이 보이지 않는 지루한 인생에서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이 이 소설 안 에 펼쳐져 있다. 바느질하는 여자와 소설 쓰는 여자 김숨. ‘명장’을 증명하지 못할지라도 삶을 견디고 살아내는 자신만의 형식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소설이다.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가 예술이라면 금택은 어머니가 하는 누비 바느질 역시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예술이라는 말을 입속에서 중얼거리는 순간 갈비뼈들이 갈라지고 벌어지는 것 같은 통 증이 느껴질 정도로 심장이 격하게 떨렸다.”
‘바느질하는 여자’로 살기 위해 결혼도 명예도, 또 다른 삶도 포기한 여자들이 여기 있다. 그녀들이 무엇을 포기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아마도 바느질을 제외한 모든 것일 것임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집요하게 한 가지 일에 매진하는 모습, 그것을 통해 궁극에 달하는 모습, 주인공 수덕은 수십 년간 옷을 짓지만 어떠한 과정도 허투루 건너뛰지 않으며 더 속도를 내지도 더 욕심을 부리지도 않는 정도에 이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만의 형식으로 ‘아름다움’을 일군 한 삶의 탐구이며, 이것 자체가 예술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것은 예술을 넘어 자기만의 삶을 살아낸 아주 평범한, 어떤 방식으로 증명되지는 않더라도 누군가는 감탄하고 존경해 마지 않는 내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옛 사람들은 옷을 지을 때 한 땀 한 땀마다 입을 사람의 복을 기원했다지. 건강과 장수를 빌면서 정 성을 다했다지.”
“복이란 게 돌고 도는 거야. 돌고 돌아 자손에게라도 되돌아가는 게 복이야.”
누비 바느질만으로 자신의 긴 인생을 살아내며 두 딸을 먹이고 입힌 수덕은 손가락이 비틀어지고 몸 이 굳고 눈이 멀고 정신이 혼돈하는 생의 마지막에 이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소설은 ‘기도’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는, 바느질하는 여자가 한 땀 한 땀에 복을 빌어 바느질을 하기 때문에 그 여자에게 옷을 지어 입으면 무병장수하게 된다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누구도 만지기 싫어하는 시신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주고 싸매며 저승 가는 길에 복을 불어넣는 일을 하는 염장이의 딸이 아버지의 덕을 이어받아 복되게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
덕을 빌고 복을 비는 일은 신적인 일이면서 인간 만의 고귀한 능력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기도로 태어났을 한 ‘사람’은 어떤 근원이, 어떤 기도가 더해 졌을지 몰라 더 깊고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작가는 옷을 지어 입으러 우물집에 들락거리는 손님들의 다양한 삶을 소설로 지어내며, 똑같이 몸과 손이 곯는 고통스럽고 고독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이렇 게 소설을 짓는 일, 이러한 시간의 견딤과 그 속에 깃든 ‘기도의 마음’ 모두가 김숨 작가의 작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과지성사 | 631쪽 | 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