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명령권, "내우외환에 발동…요건도 안돼"

與 정치적 엄포에 불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사진=윤창원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관심법안'을 처리하기 위한 긴급재정·경제명령 카드를 꺼낼지 주목되고 있지만, 헌법재판소는 과거 결정에서 그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노동‧경제‧테러방지법 등 이른바 '대통령 관심법안'의 직권상정 요청을 정의화 국회의장이 원칙을 내세워 거부하면서 긴급명령권이 거론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발동되기는 쉽지 않다.


헌법 76조는 긴급명령권을 발동할 수 있는 요건 자체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서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공공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해 최소한"의 경우다.

헌법학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대한 재정경제상 위기라는 건 열거조항으로 함께 명시된 내우 외환, 천재 지변과 같은 수준이어야 한다"며 "지금이 그런 준전시 상황이라고 볼 수도 없고, 국회도 소집돼 있어 요건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또 "만약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동해도 헌재에서 합헌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헌법 해석이 명확하고, 이미 헌재의 판단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긴급재정경제명령에 대한 헌재의 과거 판단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금융실명제(1993년)에 관한 1996년 결정이다.

이때 헌재는 결정문에서 "위기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사전적·예방적으로 발동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공공복리의 증진과 같은 적극적 목적을 위해서도 할 수 없다"며 "위기의 직접적 원인 제거에 필수불가결한 최소의 한도 내에서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행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실명제에 대한 명령 발동 당시 국회가 폐회 중이었던 것과 달리, 현재 국회는 임시회가 열리고 있어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요건도 충족되기 어려워 보인다.

헌재는 "긴급재정경제명령은 비상수단으로, 의회주의 및 권력분립의 원칙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되기 때문에 요건은 엄격히 해석돼야 한다"고 밝혔다.

헌재 재판관들의 전원일치 결정이었다.

당시 헌재소장은 박 대통령이 초대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했다가 각종 의혹에 휩쓸려 낙마한 김용준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검토해보겠다"고 발언한 뒤 청와대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진화에 나서기는 했지만, 요건 자체를 충족하지 못하는 만큼 정치적 엄포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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