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구조현장, 최첨단 구조 헬기가 '교통정리'만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5년 12월 17일 (목) 오후 6시 30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권미화 氏 (세월호 유족), 권영빈 변호사 (세월호 특조위 위원)

◇ 정관용>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어제까지 사흘 동안 1차 청문회를 진행했습니다. 모두 34명 증인과 참고인이 출석했는데 대부분 모르쇠로 일관하는 등 흐지부지 끝났다, 이런 평가가 나오네요. 이 청문회를 직접 참관한 유족의 목소리 또 이 청문회를 준비하고 진행한 특조위원의 입장까지 이어서 들어봅니다. 먼저 2학년 7반 오영석 학생의 어머님이세요. 권미화 씨 나와 계시죠?

◆ 권미화> 네, 안녕하십니까?

◇ 정관용> YMCA회관에서 3일 내내 했죠?

◆ 권미화> 네.

◇ 정관용> 3일 내내 거기에 계셨어요?

◆ 권미화> 네, 3일 동안 아이 아빠랑 계속 올라가 있었습니다.

◇ 정관용> 34명이 나왔는데 주로 정부 측 인사들이었죠?

◆ 권미화> 네.

◇ 정관용> 해경이나 해수부 이런 사람들이요?

◆ 권미화> 네.

◇ 정관용> 3일 동안 쭉 지켜보시고 첫 느낌이 어떠세요?

◆ 권미화> 이 정부에서는 밝히기 힘들겠구나, 그런 느낌이요. 그리고 길이 멀어도 돌아서 갈지라도 꼭 가야 한다는 굳은 결심이 섰고요. 억울한 모든 것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그리고 진실규명 돼서 안전한 나라까지 갈 수 있게 꼭 해야겠다는 마음을 더 굳혔습니다.

◇ 정관용> 밝히기 힘들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신 제일 큰 이유는 뭡니까?

◆ 권미화> 직접적인 요인이 애들 사망까지 그리고 대참사로 가게끔 한 장본인들이 보면 거의 다 모르쇠로. ‘기억이 안 난다’, ‘자기 관할이 아니었다’ 계속 그렇게만 얘기를 하니까요. 아, 이게 양심선언을 조금이라도 해줄 줄 알았는데 전혀 반성이 없더라고요. 그때 느낀 것은 계속 그런 마음이었고요. 억울한 사람이 끝까지 계속 밝혀야 되는구나. 이런 정부였구나. 거기에 대한 확신을 한 것 같아요, 이제는.

◇ 정관용> 증인으로 나온 분들 중에 유족들께 죄송하다, 반성한다, 이런 얘기 하는 사람 아무도 없었습니까?

◆ 권미화> 약간 그런 뉘앙스만 풍기고 그래도 그건 내 관할이 아니었다, 내 소관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계속 기억이 안 난다고 하더라고요. 변명에 불과했어요, 그냥. 반성하는 건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당시에 지시해야 될 상황에서는 안 하고 엉뚱한 지시를 했다는 것 있잖아요. 거기하고 상관없는.

◇ 정관용> 예를 들어 어떤 엉뚱한 지시 같은 것이 기억에 남으세요?

◆ 권미화> ‘갑판에서 뛰어내려라’ 이렇게 하는 것도 보면 이미 다 기운 상태에서 애들도 나오지 않았는데. 그리고 수백 명이 나오려면 많은 배들이 떠야 되잖아요. 그때 당시에 온 배는 몇 대 안 되는데 언론에서 얘기했던 건 정말 수십 척이고 그다음에 수백 명이 잠수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었잖아요. 언론에서 얘기한 것하고는 전혀 달랐고요. 또 가족들이 현장에 갔을 때는 정말 몇 대밖에 안 보였고 그 잠수부도 몇 명밖에 안 됐고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최선을 다했다고 그러고 할 것 다 해 봤다고 그런 식으로 얘기하더라고요. 그리고 거기에 만약에 생존자들이 뛰어내렸다 하면, 언론에 나온 수십 척이 오고 수백 대가 와 있었다면 정말 애들을 건져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이미 배가 기울고 정말 침몰하는 그 상황에서도 사람이 없으면 안에 다 있구나 하고 어떤 조치가 있어야 되는데요. 그런 건 없었습니다.

◇ 정관용> 안에 그렇게 학생들이 여전히 많이 있다는 사실들을 자기들은 몰랐다, 이렇게 말하는 거죠?

◆ 권미화> 그렇죠. 다 나온 줄 알았다. 다 나왔으면 정말 헬기가 수십 대가 떴으면 자기들이 몰랐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많이 알았다면 자기네들이 서로 소통했을 텐데 서로 채널을 다른 걸 쓰고 다른 정보를 주고받고 했다고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고. 그거는 못 들었다고 그러고 그런 상황들이 계속 거짓만 얘기하니까 화가 났습니다.

◇ 정관용> 장관 인사청문회 등등 이런 건 다 TV에서 생중계를 하는데 이번 청문회는 언론이 통 보도를 안 해요. 그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권미화> 글쎄요. 여당 추천한 분들도 안 나오셨는데요, 그건 뭐. 항의전화 되게 많이 했습니다, 저희. 제작진한테 알리겠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모든 방송계는 일단 왔습니다, 현장에.

◇ 정관용> 촬영하러 카메라는 다 왔어요?

◆ 권미화> 네, 왔어요. 3일 동안 계속 촬영은 하시더라고요. 방송 보낼 상황은 안 되겠죠.

◇ 정관용> 왜요? 방송 내보내야죠. 왜 내보낼 상황이 아니라고 보세요?

◆ 권미화> 글쎄요. 작년 4월 16일처럼 막 서로 앞 다퉈서 정말 생중계해 줬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반성할 기회를, 만회를 줬는데도 국민들 여전히 속이는 정부 측의 언론들을 저희는 또 한 번 봤습니다.

◇ 정관용> 아이고, 그래도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계셔서 더 죄송하네요. 말씀 여기까지 들을게요. 고맙습니다.

◆ 권미화> 네, 감사합니다.

◇ 정관용> 권미화 씨였고요. 이어서 세월호 특조위의 권영빈 위원 연결합니다. 권 위원 나와 계시죠?

◆ 권영빈> 네, 안녕하세요. 권영빈 상임위원입니다.

◇ 정관용> 이번에 34명 증인과 참고인은 주로 어떤 분들입니까?

◆ 권영빈> 주로 저희는 참사 초기 구조과정에 대해서 좀 말씀을 해 줄 수 있는 분들로 증인을 선정했고요. 주로 해경 지휘부와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했던 해경 관계자들 중심으로 했고 그다음에 매뉴얼 관련해서는 해수부나 전남 도, 소방방재청 이런 분들을 했고 또 피해자 관련해서는 수색 관련 피해자 정보접근권이나 희생자 수습과정 이런 부분들을 해서 이주영 전 장관을 불렀고 그다음에 시신 수습 이런 부분 때문에 국과수 관계자 분들도 불렀습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러면 침몰 원인이나 이런 게 아니라 참사 초기에 구조가 왜 제대로 안 됐느냐, 이게 핵심이었는데요. 그렇죠?

◆ 권영빈>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 있습니까?

◆ 권영빈> 몇 가지가 있는데요. 2014년 4월 28일에 김경일 정장, 123정 정장이 기자회견을 한 것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퇴선 방송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참사 현장 도착 직후 5분 동안 퇴선 방송을 수차례 실시했다. 이런 내용으로 시연까지 벌였던 기자회견입니다. 그런데 이 기자회견이 결론적으로 허위 기자회견인데 그것이 김석균 당시 해경청장의 지시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라는 사실이 밝혀졌고요.

◇ 정관용> 허위 기자회견이 김석균 청장 지시에 의해서 이루어진 거다?

◆ 권영빈> 네. 김석균 청장은 자기가 허위 내용까지 지시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기자회견을 열라는 것을 지시했다고 인정했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 권영빈> 그리고 참사 당시에 해경이 구조과정에서 모든 세력들이 구조에 참여할 수 있는 공용무선망, TRS라고 있었습니다. 그 TRS 녹취록이 한 가지로 정리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했고 그것이 감사원이나 검찰처럼 사정기관에 제출될 때도 서로 다른 것들이 제출됐고요. 그 중에서는 해경 지휘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부분이, 그 부분만 싹 빼서 검찰청에 제출한다거나 이런 경우가 있었고요.

◇ 정관용> 해경이 면피용으로 녹취록을 손을 봤군요?

◆ 권영빈> 그렇게 추측이 되는 상황이고요.

◇ 정관용> 네, 알겠고요.

◆ 권영빈> 그리고 CN-235 초계기라고 있습니다. 한 300억 원 정도를 들여서 구입한 최신의 장비인데요. 구조 역량을 갖추고 있는 비행기입니다. 그런데 이 CN-235기가 출동한 경위도 기장이 혼자 그냥 결정을 했다는 거고요. 그다음에 이런 훌륭한 비행기가 사고 현장에 가서는 그 위에 하늘에서 구조작업을 하고 있는 헬기들의 교통정리만 하는 것으로 자기 역할을 다 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이번에 새롭게 문제제기를 했는데요. 이런 걸 보면 그냥 현장에 도착했던 123정 정장 한 사람만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고 하여튼 해경 포함 구조세력 전부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정관용> 그 문제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다 허둥지둥한 겁니까, 아니면 아예 구조할 생각이 없었던 거예요? 뭐예요?

◆ 권영빈> 출석했던 증인들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의 책임과 관련해서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 얘기해서 그들의 입을 통해서 직접 듣지는 못했는데요. 다만 저희가 이렇게 청문회를 준비하고 실제로 청문회를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사실상 못 구한 게 아니고 안 구한 것이 아닌가. 이런 의심이 들 정도로요. 실제로 구조 신고를 받고 123정이 출동하기까지 현장에 가기까지는 30분 정도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30분 동안 세월호하고 어떻게 상태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하나도 안 됐고요. 그러니까 선장이 어디 있는지 선원들이 뭐하고 있는지 이런 걸 파악하는 능력이 없었고. 또 출동하는 구조세력들이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무엇을 해야 되는지 실제로 구조작업을 어떻게 수행해야 되는지를 아무도 누구도 얘기해 준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퇴선 방송만 있었어도 이렇게 많은 희생자가 생기지 않았을 텐데 해경청장부터 선장에 가서 구조 작업을 하는 말단 해경 승조원까지 그 누구도 퇴선 방송을 한 적이 없고 그것을 해야 된다고 말한 적도 없다는 겁니다. 그게 아주 심각한 문제고요. 누군가는 그 해경이, 훈련도 안 되어 있는 해경이 119 구조대처럼 자기 목숨 걸고 배에 들어가서 구했어야 되느냐. 이런 얘기를 하는 분들도 있었는데요.

저희가 이번에 보면서는 출동하는 과정에서 준비작업만 했어도 자기 목숨을 걸고 현장에 들어가는, 배 안에 들어가는 그런 위기상황을 맞지 않고서도 퇴선 방송만 했어도.

◇ 정관용> 알겠습니다. 다음 청문회는 어떤 주제로 어떻게 예정되어 있습니까?

◆ 권영빈> 저희가 청문회는 세월호 특별법에서 법으로 정하고 있는 건데요. 이번 1차 청문회를 마치고 내년에는 저희가 좀 조사활동을 좀 더 열심히 한 다음에 일정을 구체적으로 잡으려고 합니다.

◇ 정관용> 아직은 확정이 안 되어 있군요?

◆ 권영빈>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물론 조사가 좀 진행이 돼야 뭔가 근거를 갖고 추궁하고 물어볼 수 있는 그런 실질적 청문회가 가능해지겠죠?

◆ 권영빈> 그렇게 생각합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내년에 그나마 또 기대해 보죠. 오늘 고맙습니다.

◆ 권영빈> 네, 감사합니다.

◇ 정관용>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권영빈 위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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