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는 올 시즌 현대캐피탈에게 두 경기를 연거푸 내줬다. 그것도 세트스코어 0-3의 완패였다. 뒤늦게 합류한 외국인 선수 그로저의 컨디션이 100%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V-리그 전통의 라이벌 현대캐피탈에게 당한 2연패는 다소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패배였다.
하지만 삼성화재 임도헌 감독은 선수들을 다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선수들에게 직접 현대캐피탈의 패턴을 분석해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이었다. 카리스마보다는 부드러움을 택했다.
16일 열린 3라운드 맞대결. 이번에는 결과가 달랐다. 1세트를 내준 삼성화재는 2~3세트를 내리 따내며 승기를 잡았다. 4세트를 내주고 5세트에서도 6-8로 뒤졌지만, 결국 경기를 뒤집고 2위로 올라섰다. 거친 외모와 다른 임도헌 감독의 부드러움이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준 덕분이다.
임도헌 감독은 "될 수 있으면 편하게 해주려고 한다"면서 "부담을 가지다보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라이벌전에서는 불안감이 많이 올라간다. 물론 너무 낮아지면 안 되기에 선을 잘 지키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13점으로 제 몫을 한 센터 지태환도 "신치용 단장님 같은 경우는 엄청나게 강한 카리스마가 있었다"면서 "임도헌 감독님은 편하게, 부드럽게 해주시려 한다. 선수들기리 더 뭉쳐서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고 강조했다.
특히 2~3세트에서는 현대캐피탈의 빠른 공격을 제대로 잡았다. 선수들에게 직접 분석해보라고 했던 지시가 통했다.
임도헌 감독은 "길이 보였다기보다는 지난 경기 때 이야기를 했다. 모든 팀은 패턴이 있으니 보라고 말했다. 보고 이야기 해달라고 했다. 그걸 보고 패턴에 대해 토론도 할 수 있다"면서 "물론 상대가 다르게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패턴들을 선수들 스스로 잘 파악해줬다. 나도 분석을 하지만, 선수들이 스스로 깨우쳐서 해나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설명했다.
단 부드러움 속에서도 투지는 강조했다.
임도헌 감독은 "그로저가 조금 흥분할 때가 있다. 운동 선수라면 그런 투지는 있어야 한다"면서 "들어가기 전에 영화 글레디에이터를 봤냐고 물어봤다. 그 영화를 보면 서로 돕고, 희생하고, 의리도 있는데 그게 우리가 가는 길인 것 같다. 내가 지금 고참들 나이에 코치를 했다. 배구를 잘 아는 나이니까 조금 흔들리면 이야기만 해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약체로 분류됐지만, 삼성화재는 어느덧 2위로 올라섰다. KB손해보험전만 끝나면 올스타 브레이크다. 잠시라도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이다.
임도헌 감독은 "지금까지는 만족한다. 마지막 경기만 잘 해준다면 내가 생각했던 대로 어느 정도 맞아들어가는 것 같다. 좋은 리듬으로 휴식을 맞이해야 좋은 리듬으로 가져갈 수 있다"면서 "KB손해보험전을 이기면 생각 이상으로 휴식을 줄 생각"이라고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