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방향 및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 발표에서도 그랬다.
금융위는 "가계부채가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고 건전성도 양호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금융위는 "2010년 이후 분할상환·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늘리는 가계부채 구조개선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으며, 내년 구조개선 목표를 조기달성했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가계부채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 2월 '(한국 가계부채는) 단기적 거시경제 위협 요인이 아니며, 구조도 강해지고 있음'이라고 평가했다"고 소개했다. '가계부채 위험 경감으로 신용도에 긍정적'이라는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의 지난 4월 평가도 곁들여졌다.
그러나 IMF 아태국 딩딩 선임연구원이 한국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한 게 불과 며칠 전인 지난 11일이었다.
딩딩 선임연구원은 한국은행과 IMF가 공동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일부 아시아 국가의 부채 위험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수준에 근접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딩딩 선임연구원은 "한국의 가계대출 역시 향후 이자율 상승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난 10일 열린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가계부채 억제책이 조속히 시행돼야 한다"고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국내 가계부채 규모는 금융위가 지난 7월 '가계부채 종합 관리방안'을 발표한 이후에도 급증세가 전혀 꺾이지 않고 월평균 10조 원 이상 증가하며 폭발력을 키워 왔다. 이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까지 지난 9일 '하반기 경제전망' 발표에서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거론하고 나섰다.
KDI 김성태 연구위원은 이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주요국보다 높은 DTI(총부채상환비율) 상한을 하향 조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수도권에 적용되는 DTI 상한은 60%로, 이를 넘어가면 은행에서 대출이 거부된다. 김성태 연구위원은 집단대출과 관련해서도 "대출을 받는 가계의 상환 능력 평가를 보다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융위는 14일 DTI 그리고 집단대출 관련 KDI 권고를 모두 거부했다.
금융위는 "'DTI 규제 환원'은 경기에 관한 종합적 시각이 전혀 없이 가계부채 하나만 고려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주장"이라며 "DTI 등 규제 환원 계획은 없다"고 일축했다.
집단대출과 관련해서도 금융위는 "일반적 주택담보대출에 적용되는 똑같은 가이드라인을 집단대출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며 심사 강화 대상에서 집단대출을 제외했다.
이번 '주택담보대출 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를 통해 처음 도입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대출이 결정된 이후 관리 지표로만 쓰이는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된다.
DSR은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차주'의 상환능력을 평가하는 지표로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액에 다른 부채의 원리금 상환액을 더해 이를 연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다른 부채의 경우 이자상환액만 반영하는 DTI보다 훨씬 강화되고 따라서 더 객관적인 상환능력 판정 지표가 바로 DSR로 평가된다.
금융위가 이번 가이드라인의 핵심으로 강조한 바는 "은행 대출 심사를 '담보' 위주에서 '차주 상환능력'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금융위는 차주 상환능력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DSR을 대출 여부 결정 지표가 아닌 사후 관리 지표로만 활용하도록 했다.
중앙대 경영학과 박창균 교수는 "은행들에 '상환능력을 따져 대출을 결정하라'고 하면서 DSR을 보조 지표로만 쓰게 한 것은 알맹이가 빠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창균 교수는 "이번 가이드라인의 궁극적 목적은 가이드라인 제목 대로 후진적인 은행 여신 심사 관행 개선이지, 가계부채 문제 해결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은행 여신 심사 관행 개선에 따른 부수효과로 가계대출 증가세 완화를 기대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중대 현안인 가계부채 문제 해결에는 아주 미흡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