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을 정권교체의 희망을 만들지도 못하는 정당으로 낙인찍고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정치세력을 만들겠다”고만 밝혔다.
15일 부산을, 17일 광주를 방문하는 것이 신당 창당의 첫 행보가 될 것이다. 측근인 문병호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이 탈당해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한다. 새정치연합의 김한길 전 대표를 포함한 비주류 의원들이 합류할 경우 안철수 신당은 머지않아 원내교섭단체를 넘어설 공산이 크다. 그러나 시작은 미미할 것이다.
안철수 의원은 한국 정치를 바꾸는 주역 또는 산파역을 자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기왕에 탈당했으니까 야당만이 대상이 아닌 새누리당도 일정 부분 깨는 신당을 만들어야 대국민 설득력과 명분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큰 판의 정계개편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다.
호남 신당을 겨냥한 천정배 의원이나 박주선 의원, 박준영 전 전남지사와의 합류라는 작은 틀의 신당(호남과 부산 중심)이 아닌 새누리당의 중도·온건·개혁·합리적 인사들까지 끌어들이는 큰 판의 정계개편을 염두에 두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 측이 염두에 두고 있는 1차적 우군으로는 박영선 새정치연합 전 원내대표와 김부겸 전 의원이다. 지난달 4일 박영선 의원의 북 콘서트에 찬조 출연해 박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과의 동지애를 과시했으며, 수시로 박영선 의원 등과 만나거나 통화를 하며 정국과 관련한 깊은 대화를 나눴다. 안철수 의원은 ‘왜 박영선 의원의 대구 북 콘서트에 참석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마침 경북대학교 강연이 있어 들른 것”이라면서도 “박영선 의원만한 국회의원이 별로 없다”고 추켜세웠다.
박영선 의원은 지난 12일과 13일 오전 안철수 의원이 탈당 선언을 하기 전까지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을 중재했다. 13일 중재를 실패한 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며 "두 분이 정치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다
안철수 의원과 박영선 의원이 가까워진 것은 지난해 5월 당 대표와 원내대표 시절 손발을 맞춘 것이 계기가 됐다. 싹 튼 신뢰는 박 의원의 공감혁신위원장과 원내대표 낙마 이후 더 깊어졌다. 둘은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에 대해 의견을 같이한다.
◇ 박영선, "알에서 깨어날 때"
안철수 의원이 또 영입에 공을 들이려고 하는 야당 인사는 김부겸 전 의원이다. 김부겸 전 의원을 참여시키면 야권을 송두리째 흔들어 문재인 대표의 새정치연합을 제3당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수 있다는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노와 86운동권 출신들의 일방적이고 강성 일변도의 야당 운영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김부겸 전 의원은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이와 함께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정당을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박영선 의원의 소개로 정운찬 전 총리를 만나 경제민주화와 동반성장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세 사람은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경제·사회체제를 혁신하지 않고서는 한국의 미래가 없다는 데 의기투합했다.
◇ 경제개혁 연결고리로 정운찬도...
정 전 총리가 신당에 합류하겠다는 결단을 한다면 박영선 의원의 참여는 불가피해 진다. 정 전 총리는 박영선 의원과, 박 의원은 정 전 총리와 함께 움직이려 한다. 정운찬-박영선의 행보는 일종의 ‘세트’처럼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박영선 의원은 <누가 지도자인가>라는 책에서 정운찬 전 총리에게 큰 기회가 오기를 바란다고 썼다. 정 전 총리가 서울대 총장 시절부터 아주 친한 사이다.
안철수 의원 측이 구상하는 신당 밑그림이 안철수+정운찬+김부겸+박영선에서 그친다고 할지라도 신당 창당의 파장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야권의 분열이라는 비판을 돌파하기 어렵다. 새누리당을 겨냥한 큰 틀의 정계개편을 하라는 국민적 요구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야권표만으로는 내년 총선도, 내후년의 대선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새누리당 인사들의 참여 없는 정계개편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표의 확장성도, 국민의 삶을 위한 개선도, 경제민주화의 실현도, 지역과 이념 등 진영에 함몰된 한국 정치를 혁신할 동력을 얻기 힘들다.
◇ '유승민' 참여하면 정치권의 태풍
정치에서부터 똬리를 튼 지역주의는 국정의 모든 분야를 포함해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스포츠계 등 상하부 구조 전반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자 ‘마귀’다. 한 정치인은 “분열의 사슬을 끊는 지역주의 극복이야말로 안철수 신당의 목표이고 출발선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순히 정권교체를 위한 신당 창당으로선 새 정치의 명분도 의미도 퇴색될 수밖에 없고 포말처럼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를 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지난 7월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내침을 당했을 때 그에게 중도개혁 정당을 창당하라는 조언을 한 사람이 꽤 있었다고 한다. 그런 제안을 받을 때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진영을 뛰어넘는 새로운 중도 개혁적 정당이 아닌 새누리당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다수파인 영남과 보수의 따뜻한 울타리를 벗어나 북풍한설 몰아치는 중도개혁 노선에 가담하기 싫다는 뜻이었다. 한 야당 정치인은 “유승민 의원에겐 용기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유승민 의원의 신당 창당이나 참여는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다. 그렇지만 유 의원이 정치를 접을 수 있다는 고뇌의 결단을 한다면 대한민국 정치판은 파란이 일 것이다. 영남과 호남을, 보수와 진보를 기반으로 한 양당제가 일정 부분 깨진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과 송호근 서울대 교수,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중량감 있는 학자들은 한결같이 한국이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념과 지역주의에 얽매여 한발 짝도 나가지 못하는 나라를 바꾸기 위해선 정치 지도자들의 혁명적 결단과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너무 답답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그들은 용기없는 여의도에 ‘국가란 무엇이며, 지도자란 누구인가?’라는 본원적 질문을 던진다.
이들 원로 학자들의 고견을 경청하면 안철수의, 50대 정치인들의 나아갈 길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