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재·최민수·김미화와 함께 기록한 '세월호 1주기'

[문화연예 연말정산 ①] 다가간 과정은 달라도 아픔 나눈 마음은 똑같아

CBS노컷뉴스가 2015년의 끄트머리에서 올 한 해 문화·연예계를 달군 굵직한 사건들을 되짚어 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차곡차곡 모아 온 관련 자료와 정교한 시선으로 사건의 현재와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유병재·최민수·김미화와 함께 기록한 '세월호 1주기'
(계속)
세월호 참사 1주기인 4월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분향, 헌화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20명 중 3명, 확률로 치면 15%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들이 있었기에 세월호 참사의 아픔은 1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공유될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8개월 전, 기자는 세월호 참사 1주기 기획 취재를 위해 인터뷰 요청 명단을 추렸다. 한 번이라도 세월호와 관련된 발언을 하거나 추모의 뜻을 내비친 연예인이라면 방송인, 배우, 가수 등을 가리지 않고 모두 연락을 돌렸다.

전 국민적인 비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점차 변질되고 있었다. 비극은 정치 논리에 장악됐고,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이 유가족들을 외면한 채 첨예하게 대립했다.

세월호 특별법은 결국 피해 가족들이 가장 강조했던 수사·기소권 없이 제정됐다. 그런데 1주기 당시, 이마저 정부 시행령으로 인해 제대로 된 진상 조사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극심한 피로도를 느낀 사람들의 표적이 된 것은 피해자들인 유가족들이었다. '명확한 진상 규명'과 '온전한 인양'을 부르짖는 유가족을 향해 각종 댓글들은 '더 큰 보상과 배상을 원하는 속물들'이라고 손가락질했다. 비난과 슬픔에 지친 유가족들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정부의 배·보상을 거부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이들이 세월호 참사를 따뜻한 마음으로 추모한다면, 그들을 잊지 않았다는 목소리를 내준다면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한 기획이었다.

취재 과정은 난항에 난항을 거듭했다. 인터뷰 요청 대상인 연예인 본인의 뜻을 알 수 없는 채로 이미 소속사에 의견을 타진할 때부터 거절 당했기 때문이다.

대상은 모두 달라도 이유는 한 가지였다. "연예인 본인이 순수하게 추모의 뜻으로 인터뷰를 한다 해도, 그 안에서 어떤 정치적 해석이 이뤄질지 모른다"는 우려였다. 한 소속사 관계자는 "그러면 작품 캐스팅에도 영향이 갈 수 있다"고 난감한 입장을 전했다.

단순히 '추모'와 '기억'에 집중했던 기자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가장 정치와 무관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서 눈을 감은 304명의 희생자와 실종자들에 대한 추모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것이 온전히 그들의 탓은 아니었다. 논쟁의 소지가 있을 수 없는 비극적 사건을 이렇게까지 변질되게 한 정치권과 사회 구성원 모두에 큰 책임이 있기에.

◇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방송작가 겸 방송인 유병재. (사진=CJ E&M 제공)
한결같은 거절만 듣다 보니 '이제 기획 인터뷰는 물 건너 갔구나'라고 낙담하고 있을 때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처럼 전혀 기대치 않은 인물이 처음으로 인터뷰를 수락했다. 방송 작가이자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유병재였다.

당시 유병재는 YG엔터테인먼트 소속이 아니어서 그가 프로그램을 하고 있던 CJ E&M 쪽으로 번호를 문의했다. 용건을 말하고 생각보다 쉽게 번호를 받아 다행히 그날 저녁 유병재 본인과 연락이 닿았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기자였음에도, 유병재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했다. 한창 그의 대중적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어서 거절해도 실망하지 말자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휴대폰 너머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답이 들려온 것이다.

그는 이동 중이라 나중에 다시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시간이 늦어 인터뷰를 내일로 미룰까 망설이던 기자는 혹시나 모를 외부 상황이 우려돼 연락한 당일에 바로 인터뷰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덕분에 유병재는 마트에서 장을 보며 오후 9시경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자신이 '코미디'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코미디는 치유의 성격이 있지만, 세월호 참사의 경우에는 상처가 될 뿐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신에게도 평생 지워지지 않을 기억과 아픔임을 고백하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에 유병재가 기자에게 건넨 물음은 아직도 생생하다.

"유가족 분들께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어요. 기자님은 혹시 아세요?"

가장 대표성을 띤 단체들의 이름을 가르쳐 주면서도 얼굴에 열이 올랐다. 둔기에 가격 당한 듯 머리가 띵했다. 방송인과 기자를 떠나,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청년인 본인이 과연 유병재만큼의 소신과 마음을 가지고 세월호를 기억했는지 확신할 수 없었던 탓이다.

◇ 연예인이기 전에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어른


배우 최민수가 지난 4월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트라이브 바에서 열린 '말하는 개' 신곡 발표 기념 쇼케이스에서 열창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배우 최민수와의 인터뷰는 '삼고초려'를 방불케 했다.

최민수 소속사 관계자가 처음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몇 번의 거절이 이어졌고, 질문지를 전해 달라고 해 건넸을 때도 '최민수에게서 답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처럼 끈질긴 요청을 하게 된 이유는 '2014 MBC 연기대상'에서 최민수가 수상을 거부하며 남긴 소감에 있었다.

당시 최민수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고, "죄송스럽지만 이 수상을 정중히 거부하려고 합니다. 아직도 차가운 바다 깊숙이 갇혀 있는 양~심과 희망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나 할까요?"라는 편지를 대신 전했다. 물론 방송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암시하는 소감은 나오지 않았다. 뒤늦게 밝혀졌지만 남들과 달랐던 그의 용기 있는 발언이 뇌리에 깊게 박혔다.

포기하기 바로 직전,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최민수가 자신의 밴드 36.5도와 함께 '말하는 개'라는 신곡을 발표한 것이다. 합정역 부근, 어둡고 아늑한 라이브 바에서 이뤄진 쇼케이스에는 취재진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생애 첫 쇼케이스가 끝나자 최민수는 그곳까지 찾아 온 지인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담배 한 가치를 빼어 물고 기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을 때,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간접적인 거절을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명함을 건넨 후, 다짜고짜 '말하는 개' 속에 담긴 시대 정신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의외로 어떤 거부 반응도 없었다. 담뱃불을 붙인 최민수는 한참이나 무겁게 침묵하다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을 내놨다.

그 다음 바로 다른 매체의 인터뷰가 예정돼 있어 스포트라이트가 환하게 그를 비추고 있었음에도 끝까지 할 말을 이어나갔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 숙연하게 침묵한 채, 최민수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최민수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미래에 대한 수장식"이라고 표현했다. 연예인이기 전에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아이들이 어른들을 믿고 결국 목숨을 잃은 것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에게 세월호 참사는 진영논리로, 흑백논리로 따져가며 '피곤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인격을 갖고 있는 정상적인 사람이고, 격을 갖춘 국가라면 말이다.

◇ "이름 있는 마이크보다 자유로운 마이크에 더 큰 힘이"

개그우먼 김미화.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마지막 주자는 코미디언 김미화였다. 지금은 지상파 방송에서 모습을 볼 수 없는 그는, 연락처를 확보해 전화를 하자마자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했다. 전화를 걸 때부터 '인터뷰를 수락해 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바로 인터뷰 약속까지 잡았다. 너무 순조롭게 진행돼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김미화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TBS 방송국 근처 카페에서 화기애애한 인터뷰가 진행됐다. 말솜씨가 좋은 김미화 덕분에 마치 편한 동네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그러나 중간 중간, 그만의 강하고 굳은 심지가 엿보였다.

인터뷰 도중에도 김미화는 세월호 1주기 관련 행사로 통화를 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다. 지금껏 코미디언으로 살아 오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탓일까. 그는 누구보다 거침없이 적극적으로 세월호 1주기를 이야기하면서 추모하고 있었다.

김미화는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권에게 쓴 소리를 건네기도 했다.

"국민을 '표'로 생각하고, 권력을 가진 이들이 말장난을 한다. 도리어 코미디언들이 쓴소리를 하고 있다."

김미화가 지난 2013년 CBS 방송국을 떠난 이후, 방송에 복귀한지 한 달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미 많은 프레임 속에 갇혀 버린 그에게는 또 다른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자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이름 있는 마이크'에 충성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자유로운 마이크에 더 큰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을 향한 각종 외압을 꼬집으며 사회의 아픈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소망을 가진, 웃기는 코미디언일 뿐이라고 정의했다.

'무모한 도전'인 줄 모르고 시작했던 취재는 기자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 주었다. 어찌 되었든 연예인은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이고, 경력과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종종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을 하는 연예인들을 '소셜테이너'라고 부른다. 그들이 주목 받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그렇게 활동하는 연예인들이 별로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연예인은 사회적인 사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다. 정치 성향이나 지역으로 인한 사회 분열이 극심한 상황 속에서 말을 꺼냈을 때, 어떤 질타와 비난이 쏟아질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특정 프레임까지 씌워질 경우, 그 불이익은 더욱 커진다. 스스로 표현하는 것을 단속하고 검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당연한 말조차 쉽게 하기 힘든 지금, 그래서 15%의 확률 속에서 만난 그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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