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짐승 수비'는 KGC의 트레이드 마크다. KGC는 올 시즌 가로채기에서 부동의 1위다. 경기당 9.1개로 2위 울산 모비스(7.5개)에 넉넉히 앞서 있다. 가로채기 1위 이정현(1.9개)과 2위 박찬희(1.6개), 4위 양희종(1.5개)까지 5위 안에 3명이나 포진해 있다. 전, 현 국가대표들의 스틸은 상대의 혼을 빼놓고 사기를 가져간다.
하지만 의욕이 지나친 경우가 적지 않다. 거친 수비로 상대를 자극해 경기가 과열되는 장면이 자주 보인다. 자칫 몸은 물론 마음까지 다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또 다른 의미의 두려움을 준다.
여기에 경험까지 더해진 KGC 국내 선수들은 교묘하게 파울을 이끌어낸다. 한국농구연맹(KBL)이 심판이나 관중을 속이는 동작인 '플라핑'(flopping) 제재 강화를 천명했지만 이른바 '타짜'처럼 능수능란한 동작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KGC 거친 수비, 경기는 과열과 흥분으로
10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삼성과 '2015-2016 KCC 프로농구' 원정 경기가 그랬다. KGC는 이날도 가로채기 8개를 기록하며 삼성을 괴롭혔다. 이정현, 오세근이 2개씩을 올렸고 가로채기 14위(1.2개) 강병현이 3개를 기록했다. 특유의 강력한 수비로 삼성을 압박했다.
트랩 수비와 번개처럼 이어지는 가로채기는 분명 농구의 또 다른 볼거리다. 여기에 가로채기는 농구의 꽃인 속공으로 연결된다. 올 시즌 KGC는 팀 속공 168개로 단연 1위다. 2위 모비스(112개)와 무려 50개 이상 차이가 난다.
하지만 과한 수비는 도를 넘는 거친 몸싸움을 동반하고 상대를 자극해 종종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도 만든다. 이날 3쿼터 중반 더블 테크니컬 파울도 그랬다. 공을 경합하다 점프볼이 선언된 상황에서 삼성 리카르도 라틀리프와 KGC 마리오 리틀이 신경전을 벌였다. 팔이 낀 뒤 풀면서 리틀이 먼저 오른 어깨로 라틀리프를 밀쳤고, 라틀리프가 두 팔로 밀었다.
농구에서 공격자와 수비자 사이에 팔이 끼는 경우는 다반사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나 누가 먼저 원인 제공을 했는지 밝히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신체 조건이 불리한 쪽이 먼저 거는 경우가 많다. 또 노련하게 상대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3쿼터 종료 2분30여 초 전 라틀리프가 퇴장 판정을 받기 전의 장면에서도 다른 선수들의 팔이 엉켰다. 라틀리프의 골밑 득점 과정에서 삼성 문태영과 양희종의 팔이 끼었다. 이에 문태영이 이를 뿌리치는 과정에서 양희종이 밀려 넘어졌다. 휘슬이 불렸지만 문태영이 아닌 라틀리프가 테크니컬 파울을 받았다.
라틀리프는 득점 뒤 림을 통과한 공을 잡아 넘어져 있던 양희종을 향해 던졌다. 엉덩이 부근에 공을 맞은 양희종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라틀리프는 테크니컬 파울 누적으로 퇴장을 당했다. 4시즌째 KBL에서 뛰는 라틀리프가 테크니컬 파울로 퇴장 명령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다혈질적인 성격이 많은 외인들 중에서 라틀리프는 꽤 냉정한 선수로 평가받지만 이날만큼은 이성을 제어하지 못했다. 그만큼 KGC와 경기에서 흥분해 있었다는 뜻이다.
▲승리 열정은 좋지만 몸과 마음이 다쳐서야…
라틀리프가 다른 선수가 아닌 양희종에게 공을 던졌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양희종은 국가대표 출신으로 수비에 일가견이 있고, 열정적인 밀착 마크로 정평이 나 있다. 워낙 근성이 투철해 상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그래서 종종 상대를 일부러 자극하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빚기도 한다.
문태영은 이전 소속팀 모비스 시절부터 양희종의 수비에 대해 자주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삼성으로 이적해서도 문태영은 이날 경기에서 양희종과 일촉즉발의 신경전을 펼쳤다.
물론 승부에 집중하다 일어난 일로 고의가 없었다지만 자칫 눈을 정통으로 맞았다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었다. 20번째 시즌을 맞는 베테랑 주희정도 박찬희가 사과했지만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올 시즌 KGC는 강력한 우승후보다. 명장 유재학 모비스 감독도 1위를 달리고 있는 고양 오리온이나 모비스보다 KGC가 정상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전성기에 이른 국내 대표급 선수들의 구성에서 다른 팀들을 압도한다. 이들의 활동량을 능가할 팀은 사실상 없다.
짐승 수비는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거둔 2011-12시즌에 이어 올 시즌도 KGC의 자랑이다. 이날 경기에서도 KGC는 여러 차례 트랩 압박 수비로 삼성이 고전했다.
하지만 지나친 승부욕과 위험한 수비는 자칫 살아나고 있는 농구 코트의 재미를 떨어뜨릴 수 있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또 상대를 자극해서 당장 경기에서는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화려한 기량과 깔끔한 플레이를 원하는 팬들은 등을 돌릴지도 모를 일이다. 승리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동료애와 동업자 정신이기 때문이다.
일단 이날 승리는 라틀리프 없이 분전한 삼성의 몫으로 돌아갔다. KGC는 경기에서도, 어쩌면 다른 면에서도 졌다. KGC에게는 1패 이상의 아쉬움이 남았던 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