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전드'의 주인공은 1960년대 런던을 주름잡던 크레이 형제다. 형인 레지 크레이와 동생 로니 크레이는 빈민촌에서 활동하다가 런던 중심가로 진출하며 세력을 확장하게 된다. '레전드'는 그런 그들의 전성기를 그린다.
영국하면 '신사'를 떠올릴 많은 관객들에게 영국 갱스터들의 이야기는 다소 생소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전설'로 기억되고 있는 이들 형제를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쌍둥이인 형 레지와 동생 로지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다. 레지가 직관적 판단이 가능한 두뇌파 스타일이라면, 로니는 통제 불가능한 행동파 스타일이다. 함께 뭉치면 무서울 것이 없는 이들 형제는 마피아와 손잡고 런던 전역에 '크레이 형제'로 이름을 떨친다.
그러나 레지에게 사랑하는 연인 프랜시스(에밀리 브라우닝 분)가 생기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레지는 프랜시스와의 약속 때문에 갱스터 생활을 청산해 사업가로 살아가고 싶어한다. 반면 로니는 레지와 함께 갱스터로 활약하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끊임없이 사고를 유발한다.
영화는 또 다른 주인공, 프랜시스의 독백으로 흘러간다. 크레이 형제의 인간적인 부분을 볼 수 있는 이유도 가장 가까운 측근인 프랜시스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다소 냉소적이면서도 추억에 잠긴 듯한 독백은 중요한 사건들마다 분위기를 환기하고, 외부인이었던 프랜시스가 느낀 이들의 기이한 우애를 폭로한다.
로니를 향한 레지의 우애는 절대적이다. 로니가 어떤 끔찍한 잘못을 해도 레지는 정신에 문제가 있는 '동생'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처음에는 뜻모를 말과 함께 미친 짓을 일삼는 로니가 '광인' 같지만 점점 레지가 가진 책임감이 광기어린 집착이 된다. 결국 레지가 한 선택이 이들 형제의 삶과 운명을 뒤바꾼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한없이 잔인하면서도 코믹하다. 그야말로 갱스터 영화에 나올 법한 피 튀기는 액션이 난무한데도 로니의 기괴한 엉뚱함이 그 잔인성을 상쇄시킨다. 불시에 튀어 나오는 빠르고 경쾌한 액션은 말 그대로 '잘 빠졌다'. 방식은 다르지만 마치 지난 상반기 개봉한 '킹스맨: 더 시크릿 에이전트'를 떠올리게 한다.
갱스터 영화라고 해서 거대한 사이즈의 통쾌한 액션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일단 영화는 크레이 형제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액션보다 드라마가 더 강한 느낌을 준다. 액션은 이들 형제를 설명하거나 부딪치게 하는 도구적 역할에 머문다.
톰 하디는 완전히 같고, 또 다른 인물인 레지와 로니에 깊고 섬세하게 동화된다. 물론 특수분장의 힘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는 목소리부터 표정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까지 자유롭게 통제하고 방출한다. 메소드 연기 대부 말론 브란도의 전성기를 보는 느낌이랄까. 이쯤되면 '레전드'는 톰 하디를 위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로맨스 영화로 유명세를 떨친 영국 제작사 '워킹타이틀'의 작품이어서일까. 영화는 레지의 로맨스에도 꽤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낭만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좀 더 남성적인 갱스터 영화를 원했던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운 부분일 수도 있겠다. 결정적으로 이 로맨스조차 크레이 형제의 인간적 갈등과 형제애를 부각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갱스터'는 우리나라로 치면 '조직폭력단'과 다를 것이 없다. 마약, 술집, 클럽 등으로 이익을 취하며 구역도 관리한다. 협박은 일상, 정계 인사들과의 좋지 않은 친분도 있다. 그래서 혹여나 갱스터를 미화하는 영화라는 걱정을 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다.
실제로 멋지게 양복을 차려 입은 톰 하디의 모습은 매력적이고, 영화가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래도 철저히 일반인인 프랜시스의 시선에서 바라본 범죄와 폭력, 협박 등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들이 조롱해 왔던 경찰이 제 역할을 다하고, 파국으로 치닫는 결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골 때리는' 영국 갱스터 형제를 만날 수 있는 '청불'(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레전드'는 10일인 오늘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