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여론통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토론회에서 김춘효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강사는 박 정부의 미디어 정책들을 한국 근현대사에 묻혀 있는 미디어 검열 역사와 비교했다.
그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정치 세력(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은 미디어를 직접적으로 통제, 체제의 정당성을 높이는 데 사용했다.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미디어 법을 토대로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직접 검열을 자행했다"고 설명했다.
이완용 친일 내각이 만든 '광무신문지법'을 토대로, 이승만 정권은 '미 군정 제88호', 박정희 정권은 '최고회의 포고 제11호', 전두환 정권은 '언론기본법'을 내세웠다. 또한 각종 특혜로 순치 언론인들을 양산했고, 그들이 미디어 시장 선두주자가 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제공했다. 비판 언론은 없애고, 살아 있는 언론은 길들인 것이다.
김 강사는 "1988년 합법적 선거를 통한 정권이 탄생하면서 언론시장이 개방되고 정치권의 직접적 검열은 사라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권이 집권하면서 '직접 검열'이 20년 만에 부활했다"고 했다.
"이명박 보수 정권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를 통해 공영방송을 장악했다. 대통령이 방통위원장을 임명하고, 위원장이 공영방송 공식기구인 이사회 임원을 과반수 임명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남용, 비판적 보도를 하는 언론인을 해고했다. YTN, MBC, KBS 소속 언론인들에 대한 대대적 해고를 감행했다. 기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함으로써 언론사 내부를 장악한 것이다."
김 강사에 따르면, 박 정부의 검열 방법은 크게 ▲정부 산하 위원회를 통한 검열 강화 ▲인터넷 신문 시장 개입 ▲제휴 민간위원회를 통한 간접 검열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평가 공정성 객관성 항목의 2배 강화 규칙 개정안이 의견 수렴을 마친 상태이고, 언론중재법을 개정하여 언론중재위원회에 뉴스 삭제 기능을 부여 하려 하고 있다.
오는 10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제3자가 삭제 요청할 수 있는 명예훼손 규칙 개정안 의결을 앞두고 있다. 이밖에 인터넷 신문 등록 강화 시행령이 통과됐고,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가 구성되어 운영 중이다.
김 강사는 "출범 초기부터 정통성 논란에 휩싸인 박근혜 대통령은 이완용 친일 내각이 언론 통제용으로 최초 만들었던 언론사 등록제를 사이버 공간에서 부활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승만 전두환 박정희 독재 정권이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검열하기 위해 언론사의 통폐합을 추진했던 것처럼 인터넷 신문 자격 요건을 강화해 인터넷 언론사들의 보도 기능을 마비시키려 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독재 정권이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검열하기 위해 언론사의 통폐합을 추진했던 것처럼 인터넷 신문 자격 요건을 강화해 인터넷 언론사들의 보도 기능을 마비시키려 하고 있다"며 "이러한 정책은 신생 사이버 미디어 기업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한편, 친여 성향의 대형 언론 기득권 기업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고 우려했다.
청산되지 못한 '검열' 역사, 박근혜 정부 미디어 정책 토대 |
다음은 독자들의 이해를 위한 참고 자료로, 김춘효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강사의 발제문을 일부 요약했다. [편집자 주] ◇ 이완용의 광무신문지법 1907년 이완용 친일 내각은 반일운동에 앞장서 있었던 민간 신문들의 활동을 저해하기 위해 '광무신문지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신문 발행의 허가·보증금제도·발매금지·압수.정간·벌금·체형 등을 규정한 최초의 언론 통제법이다. 이 법으로 인해 신문을 발행하기 위해서 정부에 공식적으로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또 반정부적인 내용이 보도되었을 겨우 정간을 당하거나 기자가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이 법이 발효된 이후, 반일 논조를 전개하는 신문들은 급격하게 약화되거나 친일 신문으로 변신했다. ◇ 미 군정·이승만 정권의 '미 군정 제88호' 해방 후 3년간 한반도를 통치한 미 군정은 '광무신문지법'의 뼈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미 군정 제88호'로 이름만 바꿨다.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긴 했지만 기조는 그대로였다. 해방 이후 급격하게 등장한 좌익 계열 신문들을 탄압하기 위해 신문기사 내용을 사후에 검열해 허가 취소 조항을 명시했다. 1948년 들어선 이승만 정권 역시 이 법을 1953년까지 신문에 적용했다. 그는 또 7가지 언론 정책을 발표했는데, 이 정책은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됐고다. 또 정권에 비판적인 신문사들을 폐간하고, 언론인과 편집인을 구속했다. 잠깐이지만 표현의 자유 체감도가 급격하게 증가한 시기도 있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들어선 과도 정부가 '신문 및 정당 등의 등록에 관한 법률'을 공표하면서다. 정기 간행물 숫자가 2배~3배 급증했다. 1961년 3월 31일 기준으로 일간신문 41개에서 112개로, 일간통신 14개에서 274개로, 주간신문 136개에서 476개로 늘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는 다시 뒤집힌다. ◇ 박정희 정권의 채찍과 당근 1961년 박정희 정권은 '사이비 언론인 및 언론 기관 정화'를 명분으로 내걸고 '최고회의 포고' 제11호 4개항을 발표했다. 이 포고령으로 912개 보도기관이 대부분 없어졌다. 남은 것은 일간지 39개사와 일간통신 11개사, 주간지 32개사만 남았다. 이외에도 반공주의에 근거해 언론보도 내용을 검열했다. 1964년 한일국교 수립에 반대하는 6.3사태가 확산되자 "언론의 자유가 국가의 안정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며 '언론윤리위원회법'을 제정하려 했다. 언론계의 반발로 시행이 유보되자, 반대한 신문을 탄압한다. 1966년 <경향신문>을 강제 경매처분하고, 1967년 거액의 차관 특혜 제공으로 <조선일보>의 논조를 위축시켰다. 1968년 베트남 전쟁 한국 참전에 대해 비판적 기사를 작성한 '신동아' 사건으로 <동아일보>를 굴복시켰다. 기자들에 대해서는 신체적 테러를 가하거나 명예 훼손 혐의로 구속했다. 또한 '사이비 기자'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프레스 카드' 제도를 도입했다. 정부로부터 프레스 카드를 발급받은 기자만 보도 활동을 허용했다. '채찍'만 가한 것은 아니다. '당근'도 있었다. 수입용지 관세율을 낮추는 특혜를 신문사에 베풀고, 국내 생산용지도 싼값에 구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 저리의 장기대출을 공급하기도 했다. 이 특혜는 자금력이 약한 신문사가 시장 경쟁력에 뒤쳐져 서서히 한국 신문시장의 과점 구조를 형성해 가는 데 기여했다. 기자들에 대한 특혜도 있었다. 신문사들이 월급을 올리게 했고, 언론인 교육 기회를 확대했다. 여기에 언론인을 관료나 국회의원으로 충원하기도 하는 등 언론인들의 권력 지향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 전두환 정권 언론통제, 양성·직접 방법으로 전환' '채찍'·'당근' 정책은 전두환 정권에서도 활용됐다. 1980년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전두환 체제는 '언론기본법'을 제정, 언론인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언론기관 통폐합, '홍보조정실' '방송심의위원회' '언론중재위원회' '언론연구원' 등을 정부 부처에 신설했다. 이는 그동안 음성적 우회적 방법으로 진행되던 언론통제를 양성적 직접적 방법으로 전환한 것이다. 또한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 정권처럼 과점 상태에 있는 신문사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각종 특혜를 베풀었다. ◇ 이명박 정권에서 20년 만에 부활한 '미디어 직접 검열' 1988년 이후 합법적 선거를 통해 정권이 탄생하면서 이전과 같은 '직접 검열'은 사라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상황이 달라진다.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권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를 통해 공영방송을 장악해 나갔다. 대통령이 방통위원장을 임명하고 위원장이 공영방송 공식기구인 이사회 임원들을 반수 이상 임명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남용, 비판적 보도에 집중하는 언론인을 해고했다. 또 공공보도를 탄압하기 위한 전략적 소송으로 비판적 언론인을 길들였다. 심지어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사건을 일으켜 사이버 직접 검열을 강화했다. 개인 미디어인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직접 통제가 불가능하자 위원회 등을 동원, 한국 디지털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 또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 조직을 총동원, '댓글' 조작을 통해 대통령 선거에 적극 개입,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 박근혜 정부의 미디어 검열 유형 박근혜 정권의 미디어 정책은 아버지 박정희처럼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사용하지 않고 '채찍' 검열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미 독과점 시장이 형성돼 있는 활자 매체보다 공정성과 객관성이라는 애매한 법적 규정을 근거로 방송과 인터넷 통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검열 방법은 ▲정부 산하 위원회를 통한 검열 강화 ▲인터넷 신문 시장 개입 ▲제휴 민간위원회를 통한 간접 검열 등이다. 첫 번째는 정부 소속 위원회를 통한 검열 강화다. 공영방송 구조는 방통위를 통해,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행정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검열할 수 있다. 모두 친여 우익 인사를 이사회 임원으로 과반수 임명할 수 있도록 법이 허용돼 있다. 특히 방심위는 최근 친고죄인 명예훼손 글에 대해 제3자의 신청으로 삭제할 수 있는 규정을 추진하고 있다. 매체와 독자가 쌍방향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인터넷 매체의 기계적 특성을 무시한 발상이다. 두 번째는 인터넷 신문 시장 개입이다. 박근혜 정부는 청소년 보호책임과 저널리즘의 품질 개선 및 유사언론 퇴치를 목적으로 인터넷 신문사 자격 요건을 강화했다. 유사 언론이라는 용어의 등장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언론 통제정책을 연상시킨다. 미디어 통제 역사에서 '사이비 언론 퇴치' 레토릭은 언론 직접 통제의 다른 이름이다. 인터넷 신문 규제 강화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본력이 약한 인터넷 신문사들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 실제 이승만 박정희 정권 초기 규제 조치들은 영세 신무사들을 시장에서 사라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아직 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한 인터넷 뉴스 기업들을 몰락의 길로 내모는 것은 다양한 미디어 숲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세 번째는 대형 인터넷 기업들의 제휴 민간위원회를 통한 간접 검열이다. 다음과 네이버 등의 인터넷 기업들이 기존 기득권 언론사들과 친여 성향의 인사들로 뉴스제휴평가위원회를 구성, 인터넷 뉴스의 흐름을 좌지우지 하겠다고 결정했다. 이는 명백한 미디어 시장 개입이며, 언론 기득권 이익을 사이버 공간에서 확고히하는 조치이다. 왜냐하면 이들 제휴위원회 위원들은 대평 포털 뉴스 흐름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규칙을 정하는 온라인 뉴스 흐름 게이트 키퍼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위원들은 위원회 결정을 통해 언어와 상징을 선택적으로 노출하거나 또는 특정 뉴스 흐름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해, 억제적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담당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