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에 위치한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UC버클리)입구.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차로 10분 정도 달리면 미국에너지부(DOE) 산하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awrence Berkeley National Laboratory, LBNL, LBL)'가 나타난다. LBL 입구에서 조금 더 언덕을 오르면 원형으로 된 커다란 돔형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LBL의 대표 연구시설로 둘레 200m에 달하는 방사광가속기 'ALS(Advanced Light Source)'가 있는 실험실이다. 실험실 가운데에는 1929년, UC버클리 교수였던 어니스트 로렌스가 고안한 세계 최초의 원형 가속기가 놓여있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시켰을 때 발생하는 빛을 이용해 물질의 특성을 관찰하는 기기다.
과학기술계에서 ALS의 인기는 대단하다. 지난해에만 ALS를 사용한 실험이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건수는 1000여건. 1년 평균 가동 시간은 5000시간이 넘는다. ALS에 있는 40개의 라인은 이미 세계 각국에서 온 실험장비로 가득 차 있다.
ALS가 과학기술계에서 이처럼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대학 인근에 위치한 입지 조건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케반 부센터장은 "대학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인력이 유입될 뿐 아니라 연구협력도 잘 이루어지고 있다"며 "LBL은 한 그룹이 할 수 없는 규모의 연구를 많이 하는 만큼 대학과의 교류는 좋은 성과를 내는 기본 요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LBL과 UC버클리간의 협력은 학생들의 교육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학부생, 대학원생이 ALS와 같은 장비를 직접 다루는 일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박원영 LBL 연구원은 "학부생 때 ALS를 직접 다뤄보고 실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연구자로 커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며 "학생들이 실제 실험에 참여하면서 학점까지 인정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 연구소의 경우 지원인력 비율은 20%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학자들이 "장비보수나 행정업무를 처리하느라 연구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이유다. 모성관 LBL 연구원은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엔지니어를 비롯한 지원인력들은 자신들의 역할이 과학기술 발전에 큰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과학자들도 이를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한국에서는 장비를 다룰 수 있는 '테크니션'이나 엔지니어 대부분이 계약직이다. 자부심은커녕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테크니션이나 엔지니어 등을 키우기 위한 투자는 언감생심이다.
과학자들이 정년 없이 연구할 수 있는 것도 연구 분위기를 조성하는 중요한 요건이다. 올해 61살인 케반 부센터장은 언제까지 연구할 것이냐? 는 질문에 "연구가 지겨워 질 때까지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상연구위원은 "미국에서는 과학자들의 정년이 없으며 80세까지도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해외 우수 한인 과학자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연구의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 못지않게 연구외적인 여건이나 환경 조성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